<취재일기>美언론의 영웅만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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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4일 미국 신문들은 약속이나 한듯 한 스포츠스타의 죽음을 대서특필했다.미국인들이 야구영웅이라고 일컬었던 前 뉴욕 양키스소속 강타자 미키 맨틀의 사망기사였다.
뉴욕 타임스는 현역시절 그가 유니폼을 입고 환하게 웃는 사진등 전면의 4분의1 정도를 할애하고 스포츠면등 3개면을 맨틀의기사로 채웠다.워싱턴 포스트도 3개 면에 맨틀특집을 다뤘고,유에스에이 투데이.워싱턴 타임스.보스턴 글로브 등 도 비슷한 크기로 맨틀의 죽음을 다뤘다.
美언론의 이같은 보도를 보며 느끼는 몇가지 놀라움이 있다.맨틀이 국정을 좌우하던 정치인도 아닌데 너무 과하게 취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그것이다.사람의 가치를 직업으로 나누는우리네 풍토에 익숙한 데서 오는 선입견 때문이다 .
놀라운 것은 보도자세다.거의 예외없이 미키 맨틀의 업적과 위대함에 초점을 맞춰 「우리들의 영웅」이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신기(神技)라는 재능 못지않게 그 를 세인(世人)의 입에 오르내리게 했던 폭음등 맨틀의 무절제하고 어 두운 면은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언급이 없다.
같은날 함께 소개된 유명 기타연주자 제리 가르시아의 장례식 기사도 마찬가지다.마약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결국 죽음에 이르렀음에도 마약은 접어두고 그의 음악적 재능과 미국 팝음악에 대한 그의 기여를 부각시킴으로써 또 한명의 영웅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 때문인지 美사회 곳곳에는 작은 영웅들이 많다.소방관이나 우편배달부등 보통사람들이 영웅으로 대접받아 지명이나 거리이름으로 등장하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웅만들기와 영웅보호는 긍정적 사고의 소산이다.냉소와 부정(否定)이 팽배하고 걸핏하면 서로 헐뜯는 사회와 비교할 때 어느쪽이 나은지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우리 사회가 어디에 속하는지자문을 해본다.「덜미를 잡는」쪽인지,아니면「등을 밀어주는」 쪽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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