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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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섬 위 하늘엔 검정 날개의 새떼가 소리치며 날고 있었다.제비보다 크고 갈매기보다 작다.
숨가쁘게 어지러운 몸짓.저것도 「비상(飛翔)」임엔 틀림없다.
『무슨 새예요?』 아리영이 하늘을 우러러 물었다.
『글쎄요?』 나선생도 하늘을 보며 갸웃거린다.
『바다제비일까요? 바다지빠귀 같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봤으나 고개를 젓는다.유람선 선원도 모른다고 한다.마라도의 바닷가 하늘을 뒤덮고 새까맣게 떼지어 날아다니는 저 흔한 새 이름을 모른다니 답답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름」에 무심한 편이 아닐까.「이름 모를마을의 이름 모를 산에 오르니 이름 모를 나무에 이름 모를 새가 앉아 이름 모를 노래를 부르고 있더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지 않은가.자기 외의 개체엔 관심을 두지 않는 탓일까.아니면 생활을 사랑하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까닭일까.
마라도 최남단에 섰다.이곳이 우리 국토의 남쪽 끝이다.
애달픈 생각이 들었다.국토란 지킬 수 있을 때 비로소 국토일수 있다.사랑의 영토도 마찬가지다.
『왜 마라도라 이름 지었을까요?』 계속 이름에 집착하게 된다.스스로 이상했다.
『머리의 옛말이 「마라」지요.아마 우리 땅의 끄트머리라는 뜻에서 「마라」라고 불렀는지도 모르겠군요.』 섬엔 까만 염소가 많았다.쌍둥이 형제가 새끼 염소들과 함께 뛰노는 사이에 나선생이 얼른 말했다.
『일본 남자들도 이 마라도에 오면 자꾸 섬 이름의 뜻을 물어본답니다.』 『왜 그럴까요?』 『일본말로 「마라(まら)」라고 하면 남성의 상징을 가리키는 말이지요.그래서 마라도의 「마라」도 그런 뜻이 아니냐는 거랍니다.지도에서 본 섬의 모양도 꼭 그렇게 생겼다나요.핫하하….』 생김새로 보아 북쪽 끝이 귀두(龜頭)에 해당된다는데,그 자리가 바로 「처녀당」 사당자리니 영락없는 일 아니냐고 한다는 것이다.「처녀당」은 「할망당」이라고도 불린다 했다.
『재미있는 사람들이군요.』 『하긴 일본말의 그 「마라」도 「머리」의 우리 옛말 「마라」에서 와전된 말이니까 어원(語源)은같은 셈이지요.』 나선생은 몸가짐은 조신하지만 말은 거리낌없이하는 편이다.그것이 오히려 상쾌했다.
마라도 분교는 오분자기처럼 작고 예쁜 국민학교였다.작디작은 전복 같은 조개가 오분자기다.제주 특산이다.
교실 한가운데 책상과 걸상 하나가 놓여 있다.아이 하나를 위해 하나의 학교가 있다는 사실이 가슴 뻐근하게 고마웠다.결국 소중한 것은 「하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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