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옮겨갈 혁신도시 기업 안 오고 미분양 우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14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국토해양부의 보고서 사본. 혁신도시 사업과 관련해 예상되는 문제점들이 상세히 지적돼 있다.

국토해양부가 현 정부 출범 후 전국 10곳에 157개 공공기관을 이전해 건설하는 혁신도시 사업의 문제점을 조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부는 조사 결과를 지난달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사실은 14일 본지가 입수한 국토해양부 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의 ‘공공기관 지방 이전 및 혁신도시 건설 관련 예상 문제점 및 대응방안’ 보고서를 통해 밝혀졌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국토부가 노무현 정부 당시 수립·추진된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혁신도시 건설계획의 문제점을 조사한 결과 재원 마련과 기업 유치 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토부는 “혁신도시의 조성원가가 인근 산업단지 분양가보다 2∼6배 높아 기업 유치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또 “높은 토지보상비와 기반시설비 등이 반영된 고(高)분양가로 인해 주택 미분양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상당수 이전 대상 공공기관이 청사 신축에 국고를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한 사실도 확인됐다. 국토부는 “재원이 부족한 43개 기관에서 약 2조9000억원의 국고 지원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지난 정부가 혁신도시 추진을 위해 목표 인구를 부풀린 의혹도 제기됐다. 보고서는 “혁신도시 개발계획상 목표 인구(2020년 2만∼5만 명)는 가족과의 동반 이주를 전제한 것이나 현재로서는 동반 이주 의향이 낮다”고 지적했다. 국토부가 예시한 한 국책연구기관의 설문조사(지난해 5월)에 따르면 전체 대상자 중 이주 의사를 밝힌 사람은 60%였으며 이주 예정자 중 46%가 ‘혼자 이사할 것’이라고 답했다. 국토부는 “혁신도시의 인구 유입이 저조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공기업 민영화·통폐합도 혁신도시 사업에 차질 요인이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보고서는 “혁신도시 규모 축소가 우려된다”며 “이전 효과가 큰 공기업의 민영화 및 통폐합 시 인구 유입과 (산·학·연) 클러스트 구축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토부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여권 관계자는 “국토부가 당초 청사 신축비를 국고에서 지원하고 혁신도시의 주택 분양가를 인하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으나 청와대가 부정적이어서 보다 근본적인 개선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공공기관 이전과 혁신도시 사업 변경을 추진할 경우 예정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불가피해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제주도·경북 등 5개 혁신도시는 지난해 착공했고 강원도·전북 등 미착공 5개 지역에서도 토지보상 협의율이 50%를 넘어 계획 수정에 어려움이 클 전망이다. 2조9000억원으로 추정되는 총토지보상비 중 지난해 말까지 지급된 보상비는 모두 1조6000억원이었다.

지난 정부가 지역 균형발전 차원에서 추진한 혁신도시는 효율성 문제 등으로 반론이 제기돼 왔으나 지난해 12월 11일 한국전력 등 28개 기관의 이전 계획을 발표하는 등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까지 강한 의지를 보였다.

강주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