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석씨 첫 장편 "헤이,우리 소풍간다"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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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데뷔작인 중편 『내가 사랑한 캔디』에서 사회적 정체성을 찾지못해 방황하는 신세대를 그려 주목받은 白민석(24)씨가 첫 장편 『헤이,우리 소풍 간다』(문학과 지성)를 펴냈다.
『…캔디』에서 白씨는 95년의 신세대를 물질적 풍요에 반비례해 정신적 빈곤에 시달리는 「또다른 고아세대」로 봤었다.
『헤이,…』는 이같은 관점을 더욱 확대해 신세대다운 스피디한문체와 영상적 감수성으로,신세대를 비상구조차 없는 좁은 공간을질주하는 분노하는 세대로 묘사하고 있다.
제목으로 쓰인 「헤이」는 부품처럼 혹은 흔들리며 사는 세상사람들에게 외치는 국외자의 조롱으로 들린다.또 「소풍 간다」는 이 역겨운 세상으로부터 우리는 어쨌든 탈출하고 있다는 뜻인 것같다. 그러나 사실상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살인과 폭력,기묘한 섹스가 뒤얽힌 『헤이,…』의 세계는 대단히 비극적이다.
또 그만큼 적나라하다.
만화적 환상과 광기가 가득한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이 소설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병익씨는 『우리 전래의 문학적풍속을 무너뜨리는 방법으로 한시대의 망가진 꿈과 치유되지 않을설움을 뭉텅뭉텅 쏟아내는 작품』이라고 평하고 있다.
작가 자신은 『기존 소설에 비해 폭력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상황보다는 덜 폭력적이어서 유감』이라며 현시대를 정신분열증적 시대로 보고있다.
『헤이,…』는 80년 무허가 판자촌에서 국교 상급학년을 보낸20대들의 살풍경한 성장과정과 삭막한 지금의 내면을 「파멸을 맞이하는 어느 하룻동안의 행적」을 통해 그렸다.
80년은 「광주의 피」로 물든 해였고 소설 속 달동네의 세태는 가위 동물적이다.그 속에서 아이들은 학교 뒤편 굴 안에서 웅크려있거나,좀도둑질을 하거나,아니면 삼청교육대로 끌려가는 동네 사람들을 구경하며 자란다.
그러나 80년은 흑백TV가 컬러TV로 바뀐 해였다.흑백의 판자촌에서 컬러TV의 만화영화는 아이들의 피안이었다.
자연스레 그들은 서로를 「딱따구리」니 「일곱난쟁이」로 또 「요술공주 새리」나 「집없는 소년」「박스바니」로 부른다.
정체성을 잃은 채 어른이 된 이들이 그리워하는 유일한 대상은국교 시절 우유병 속의 유리구슬등 무엇이든 소리를 낼 수 있는물건들로 「화음」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려고 애쓴 음악선생뿐이다. 그러나 그 80년대에 음악선생은 정신병원으로 「탈출」했고 그들은 환자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화음」의 세계를 엿본다.
白씨는 이 부조리한 세상이 재즈적 화음으로 조화되기를 바라는듯하다.죽음을 상처입은 자들의 저택이라고 믿는 『헤이,…』는 아직 악마의 재즈로 들린다.
분노의 세계관이라는 독특한 白씨의 소설 색깔은 과거 미국의 비트족 소설이나 영국의 성난 젊은이들 소설과 맥이 닿아 있다.
〈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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