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밖에서본한국>上.낙후된 對美로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마치 신드롬처럼 번지고있는 국제화 구호. 하지만 아직도 국제무대에서 한국의국제화수준은 질적.양적으로 크게 미흡한 실정이다. 국제무대에서 아직도 변방을 맴돌고 있는 한국 국제화의 현주소를 워싱턴.뉴욕특파원들의 눈을 통해 본다.<편집자 주> 미국정부의 통상압력이 가중되던 수년전 한국정부의 관계 장관이미국측에 미국의 한국산 수출품에 대한 비효율적 통관절차에 불만을 제기했다.
미국측은 당연히 그 사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라고 요구했다.
며칠후 고심끝에 마련된 장관명의의 「미국정부의 비효율적인 통관절차에 대한 회답」이 서한형식으로 美통상관계 부처에 전달됐다. 이 서한을 접수한 미국측은 아연했다.한국정부 관계장관의 서한은 문제의 한국수출품 품목과 수출일자,미국내 하역항구 그리고통관지연등에 관한 내용이 불과 편지지 한장 길이에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정부는 『장관이 보내는 서한이 어찌 실무자들이 하듯 시시콜콜하게 모든 내용을 적시하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상대방을 설득하기 보다 상대방이 스스로 납득하기를 바라는 이같은 한국식 협상자세는 지금도 美워싱턴에서 이뤄지고 있는 한국기업이나 정부의 낙후된 대미(對美)로비방식의 한 전형으로 지적되고 있다.
워싱턴을 중심으로한 美법무부 등록 로비스트는 개인 및 회사를통틀어 모두 7천4백개다.이중 외국이 고용한 개인이나 법률회사등 대미 로비창구는 95년 4월 현재 모두 1천3백8개에 이른다. 이중 한국의 등록 대미로비창구는 37개로 미국법무부 등록1백84개국 가운데 숫자상으로는 6위다.
등록 로비스트 숫자로 본 순위는 일본(1백46).캐나다(80).영국(67).독일(51).프랑스(38).한국(37).멕시코(36).이스라엘(30).대만(29).스위스(26).러시아(23).중국(21개)순이다.
그러나 한국은 로비스트 규모에서 12위권내에 드는 어떤 다른나라보다 로비방식이나 효과에서는 가장 뒤지고 있으며,훨씬 비효율적이라는 것이 워싱턴 정가(政街)의 중론이다.
한국은 로비의 기초로 인식되는 자금.조직 등에서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한국과 일본의 로비스트로 일하고 있는 김석한(金碩漢)변호사는 지적한다.
일본의 대미로비는 지난 90년 美의회의 본격적인 청문회 대상이 될 정도로 조직과 자금에서 두드러졌다.당시 일본의 미국내 로비자금은 4억달러에 달했다.
대만의 대미로비자금은 현재 최대 1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있다.한국의 대미로비자금은 지난 84년 일본의 1천분의 1에 지나지 않았으며 현재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장 견고하고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이스라엘의 로비는미국내 유대인단체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유대인들이 미국의 외교는 물론 정치.경제.언론.학계의 지도급에 포진하고 있어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스라엘의 대미로비는 미국 각료임명에까지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대만은 지난 80년대 중반 부터 중진의원은 물론 실무급에 대한 지속적이고 끈끈한 對의회로비를 계속해와 의회내 공화당 의원들은 물론 심지어 민주당의원들의 親대만화에 성공한 독특한 나라로 꼽힌다.리덩후이(李登輝)대만총통의 방미(訪美)는 대만로비가 만들어낸 최근의 「걸작」으로 꼽힌다.
이같은 사례에 반해 워싱턴의 한국상사원들이나 주미대사관의 통상관계자들은 한국의 로비가 수준이하라는데 이론을 제기하지 않고있다. 이같은 미약한 로비활동의 커다란 이유중 하나는 한국내 로비에 대해 범죄시하는 인식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로비에 대한 인식은 70년대말 박동선사건으로 알려지고 있는 코리아게이트가 남긴 부정적 시각이 아직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한국은 코리아게이트 이후 대미로비가 거의 중단되다시피 했으며 이같은 후유증은 최 근들어 대미통상문제가 현안으로 부각되면서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즉 로비를 대미통상이나 정치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발등의 불끄기 식의 대응으로 나온다든가 아예 한국내에서 소극적 태도를 보임으로써 현지에서의 효율적인 로비활동에 제약을 가하고있다는 것이 워싱턴 현지의 불만이다.
94년 현재 한국이 고용한 37개 대미 로비단체 가운데 11개는 94년이후에,다른 8개는 90년이후에 계약된 것만 보아도우리의 대미 로비에 대한 인식이 아직은 초보단계라는 사실을 알수 있다.김석한변호사는 로비를▲법적으로 보장된 방법으로 美의회나 정부인사를▲충분한 자료를 통해▲논리적으로 설득함으로써▲목적을 달성하는 「정당한 행위」라는 인식이 자리잡지 않을 경우 한국의 대미로비는 앞으로도 계속 낙후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워싱턴=陳昌昱특파원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