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논단>서민경제 비웃는 4천억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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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심오한 정치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탓인가.우리 상식인들은「4천억원」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납득가지 않는다.백화점 들어가기를 두려워하며,지하철을 타고 마음 졸이며,타고 있는 자동차가 빨리 다리 위를 벗어나 주기를 바라면서도,월급 봉투에서 여지없이 떼가는 세금에 대해 불평 한마디 안하는 우리 상식인이자소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이 우매한 의문을 풀 수는 없을까.
첫째로 도대체 4천억원이란 어떤 크기의 돈인가.셈에 밝은 사람은 남한의 4천만 인구 한사람이 만원씩 모으면 4천억원이 된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한끼 식사를 소시민들이 좋아하는 3천원짜리 자장면으로 때운다면 남한 국민 전체가 세 끼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돈이다.바꿔 말해 그 돈이 신문에서 보는대로 부정하게 모아진 것이 사실이라면,온 국민들은 하루 세끼를 굶어절약한 돈을 고스란히 빼앗긴 셈이 아닌가.
둘째로 그런 돈이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었단 말인가.가명(假名)이 무엇이고 차명(借名)이 무엇이며,또 도명(盜名)은 무엇인가.실명제를 실시하면 「검은 돈」이 없어지고 누구나 공평히 세금을 내게 된다기에 온갖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실 명제를 받아들이고 혹시나 근로소득세율이 인하되기를 고대했는데 아직도 한 사람이 자그마치 4천억원이나 비실명으로 가지고 있다니 그것이 가능한 이야기인가.떠들썩했던 개혁은 무엇하자는 것이었는가.최근에 개혁이 국민들에게 불편을 줘 개혁을 주도한 정당이 지자체 선거에서 참패했다고 개혁을 보완해야 한다고 하던데 그것은 또 누구의 불편을 뜻하는 것인가.설마 어렵사리 4천억원을 감추느라애쓴 분의 불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셋째로 이런 중대한 문제의 옳고 그름을 밝힘도 없이 이 문제를 제기한 장관이 왜 갑자기 해임돼야 하는가.그의 해임이 그의잘못을 의미하는가.그렇다면 그의 잘못은 과연 무엇인가.없는 일을 만들어낸 때문인가,아니면 모른체해야 하는 걸 발설한 때문인가.그 장관의 말이 옳았다면 그의 명예는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넷째로 왜 당국은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명확히 밝히기를 꺼려하는가.깨끗한 정치가 이 정권의 목표가 아닌가.이 정권만 깨끗하면 된다는 말인가.아니면 과거의 실력자들이 아직도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 그들을 조사한다는 것이 어렵기 때 문일까.
다섯째로 의심을 받는 당사자들은 왜 명예회복을 위해 나서지 않는가.온 국민이 바라는 대로 존경받는 前대통령으로 남아있어야할 것이 아닌가.정정당당히 재산을 공개하고 존경받아야 할 前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을 고발해야 할 것이 아닌가.만의 하나 4천억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회개와 더불어 전액을 이 사회의 정의를 회복하는 일에 쓰여지도록 희사하는 것은 바랄 수 없는 일인가.
이런 유치한 의문을 지닌 소시민들을 비웃지 말기 바란다.또한이 의문 속에 거론된 당사자들이 이런 치졸한 의문들에 의해 심기가 불편해졌다면 용서를 빈다.단지 우리들의 소박한 바람은 이런 의문들이 풀려져야 한다는 것 뿐이다.
상식을 지닌 소시민들이 온갖 쓸데 없는 의문 속에서 벗어나는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열심히 일하고 세금내는 데 인색지않고 그 대가로 안전하고 깨끗한 삶의 터전을 누릴 수 있으며 아울러 그런 사회를 만들어 주는 정치인들을 마 음껏 존경하는 그런 삶은 불가능한 것인가.
〈延大교수.경제학〉 李 榮 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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