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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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2부 불타는 땅 운명의 발소리(11)화순이가 죽었다구,바다에 몸을 던졌다구.나무 밑에 퍼질러 앉아 길남은 이를 악물며 눈을 감는다.그럴 수도 있는 거였다.아니다.그럴 수는 없다.어떻게 화순이가 죽는단 말인가.
방을 나온 진규가 길남의 등뒤로 다가가 섰다.
『미안하다.너희들 두 사람 사이를 내가 잘 몰라서…아니,네 마음을 내가 몰랐다.』 『몰랐다구.』 길남이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너같은 새낀 몰라도 된다.』 벌떡 일어난 길남이 진규를 밀치며 방으로 걸어갔다.
깨진 술병 조각이 널려 있는 방으로 들어선 그는 오시이레 문을 열고 안에서 됫병 술을 하나 꺼냈다.병마개를 딴 그는 두 손으로 병을 들고 들이붓듯이 술을 마셔댔다.턱을 타고 흐르는 술을 손바닥으로 닦아내면서 길남이 등을 돌렸다.이 글이글 불타고 있는 눈으로 그는 진규에게 물었다.
『다시 한번 말해 봐라.어떻게 죽었다구?』 『미안하다구 하잖니.내가 생각이 좀 모자랐다.』 길남이 소리쳤다.
『어떻게 죽었냐구!』 『바다에 빠진 걸 건졌다고 했잖어.』 『그래서,장례는? 어떻게 치렀냐?』 『결국…화장을 했지.』 길남이 다시 벌컥벌컥 술을 들이켰다.
『뼛가루가 든 단지라도 있을 거 아니냐?』 『병원의 명국씨가가지고 있는 걸로 안다.소문이 그렇게 나있어.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숙였던 길남이 한손에 술병을 든 채 방을 나섰다.진규가 황급히 그의 앞을 막아섰다.
『어딜 가려고 그래?』 『비켜,이 새끼야,널 죽여 버리기 전에.』 방을 나선 길남은 숲으로 난 길을 걸어들어갔다.흐트러진손길로 허공을 내저으며,두 손을 들어 몇 모금씩 술을 마셔 가면서 그는 허청거리는 걸음으로 숲길을 걸었다.
화순이 죽었단다.울음을 참는 길남의 목구멍에서 으윽거리며 짐승같은 소리가 새어나왔다.약속을 한 게 있는데,이 미련한 것아,그 약속이 그렇게도 멀고 힘들었단 말이냐,이제까지 살아왔으면서 더 못 참을 게 뭐가 있었더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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