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균의 뇌 이야기] 즐거운 상상 하면 기분 좋은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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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호 39면

회색 건물, 아스팔트, 사방이 막힌 사무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지만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환경이다. 우리가 접하는 자연이라고 한다면 직장을 오가며 스쳐 지나가듯 보는 가로수와 화분이 전부일지 모른다. 만약 일하는 공간에서 창밖으로 산이나 바다를 볼 수 있다면 대단한 행복이다.

만약 당신이 운이 좋고 여유가 있다면 자연으로의 탈출을 시도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안 중 하나는 마음속으로 상상하는 것이다. 상상은 시공을 넘어 원하는 어느 곳에라도 우리를 데려다줄 수 있다. 잠시 눈을 감고 푸른 바다, 맑은 호수, 새가 지저귀고 나무가 울창한 숲 속을 상상해 보자. 만약 당신이 자연 속에서 기분 좋아진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그때의 기분을 느끼며 잠시나마 위안이 될 것이다. 우리의 뇌는 어떻게 모든 감각을 실제인 양 느끼도록 만들 수 있을까?

심리치료법 중 유도심상법(guided imagery)이라는 것이 있다. 현재 공황장애의 치료에 이용돼 효과를 인정받고 있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편안히 이완된 상태에서 눈을 감고 햇살이 따사로운 해변의 그늘에 누워 있다고 상상하고, 다음엔 시원한 바닷바람 쐬는 것을 상상하며, 촉각과 후각 등으로 감각의 범위를 넓혀 간다. 점차 긴장은 이완된다. 이처럼 유도심상법은 상상력만으로 뇌를 자극해 뇌가 실제로 근육의 긴장을 풀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시각적인 상상이 뇌를 실제처럼 활성화한다는 보고는 무수히 많다. 진짜 사과든 상상 속의 사과든 뇌의 비슷한 영역을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축구를 해본 사람이라면 실제로 축구를 하든 축구하는 모습을 상상하든 뇌의 활동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상상에는 자극이나 행동이 결여된다는 것뿐이다.

이탈리아의 로마대 연구팀이 2004년 유럽 인지심리학회지에 발표한 보고서는 뇌가 단지 시각적인 상상뿐 아니라 다른 감각에 대한 상상에 의해서도 활성화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뇌영상 방법을 이용해 피실험자들에게 청각·미각·후각·촉각 등 여덟 가지의 다른 감각을 상상하도록 지시하고 그들의 뇌 활동을 측정했다. 그 결과 중간과 아래쪽에 위치해 있는 측두엽의 뒷부분 (그림의 빨간 부분)이 여러 다른 감각에 의해서도 활성화됐다.

이처럼 생각과 상상만으로 우리의 뇌는 실제처럼 느낄 수 있다. 완전하게는 아닐지라도, 이것은 참 감사할 일이다. 당신이 바쁘고 힘들 때,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을 때, 마음의 안식이 필요할 때 눈을 감고 당신이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곳을 상상해 보라.
상상은 우리의 경험에 의해 많은 제한을 받는다. 예를 들어 눈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아프리카 원주민에게 겨울 눈이 내리는 풍경을 상상해 보라고 한다면 그들은 서늘한 기분을 전혀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현대와 같이 시각적·청각적 자극이 미디어를 통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사회에서는 원본 없이도 머릿속에 감각을 복제할 수 있다. 미래에는 감각기관을 건너뛰어 중추신경계를 직접 자극하여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감각을 경험하게 해주는 기술도 나올 것이다. 이는 ‘매트릭스’ 등 미래를 다룬 여러 영화에서 보여준 바 있다.

프랑스 철학자 보들레르는 그의 저서 시뮬라시옹에서 원본이 없는 복제와 그 복제가 원본을 대체하는 것을 포스트모던 사회의 특징이라고 했다. 컴퓨터에 의해 만들어져 우리의 뇌로 직접 전달되는 감각, 즉 완벽한 가상현실은 미래에 우리에게 전혀 다른 세상을 열어주겠지만 우리가 그러한 인위적 상상 속에서도 휴식을 취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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