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당대표 안 나갈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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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민주당 선대위 해단식이 10일 서울 당산동 당사에서 열렸다. 손학규 공동대표는 “선거 결과를 국민의 뜻으로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강금실 공동 선대위원장, 손학규·박상천 공동대표(왼쪽부터) 등이 해단식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사진=오종택 기자]

“정치인은 들고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경선에 나서지 않겠다.”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10일 당권에 재도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손 대표는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들은 아직도 우리 당에 더 큰 쇄신과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저는 당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 평당원으로서 책임과 사명을 다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당 대표로서 전당대회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자 하지만, 이 또한 만약 전당대회 준비를 위한 체제나 책임을 달리 마련할 필요가 있으면 언제든지 기꺼이 저의 책임을 벗을 자세가 되어있음을 말씀 드린다”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 대표직을 조기 사퇴하고 당을 비상대책위 체제로 운영하는 것도 수용하겠다는 얘기다.

그의 전당대회 불출마 발표는 나름의 고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당내에선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81석을 차지한 것을 두고 “그 정도면 선전했다”는 반응이 많아 손 대표의 당권 재도전 가능성을 내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손 대표는 당분간 백의종군하는 길이 장기적으로 더 유리하다고 본 것 같다.

그는 전날 밤 자택에서 혼자 작성한 A4 용지 4장 분량의 회견문을 통해 “대선 패배 후 흐트러진 당의 체제를 정비하고 쇄신을 추진해 전국 정당으로 자리매김했다”면서도 “민주당이 독자적으로 개헌 저지선을 확보하지 못하고 특히 서울에서 참패한 데 대해 깊이 반성한다”고 말했다.

그의 결심에 대해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왔다. 한 당직자는 “차기 대권주자로서 계파 간 알력에 휘말릴 가능성이 큰 경선에 뛰어들어 공연히 갈등의 소지를 남길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당 관계자는 “거의 모든 계파가 무너진 상황에서 손 대표의 측근들만 약진했단 일각의 여론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놨다. 대선 참패 후 당의 앞날이 불투명한 시점에서 대표라는 ‘독배’를 자청했고, ‘살신성인’의 명분하에 서울 종로에 뛰어들어 나름대로 괜찮은 성적을 거뒀기 때문에 이제까지 당에서 벌어놓은 점수를 당권 쟁취 과정에서 날려버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특히 당 공천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느끼는 옛 민주계나 정동영 계에선 공공연히 손 대표에 대한 불만을 터뜨려왔던 게 사실이다. 손 대표가 전당대회에 출마했더라면 이 같은 불씨가 점화될 가능성이 컸다.

손 대표는 당분간 당내 계파 갈등에서 한 발 비켜나 2선에서 2012년을 향한 장기 플랜을 구상할 것으로 보인다.

글=김경진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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