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요한의나!리모델링] 피할 수 없는 문제라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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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학원 강사인 H씨(30·여)가 병원을 찾았다. 그녀의 주된 감정은 우울함이었지만 바탕에는 학원강사라는 직업에 대한 회의가 무척 강했다. 대학원 시절에는 강단에 서고 싶었을 만큼 학문적 열정이 강했던 그녀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계속된 자기회의를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주문을 외우며 버티었다. 그러나 서른이 넘어서자 주문의 약효가 떨어졌다. 어느 순간 현재의 즐거움도, 미래의 희망도 없는 지친 영혼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학자들은 사람들이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식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문제 중심적’ 대처 방식이다. 이는 말 그대로 스트레스를 주는 문제를 바꾸는 것이다. 이를테면 일이 맞지 않으면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서 중심적’ 대처 방식이다. 이는 문제보다 문제를 받아들이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쉽게 말해 일 때문에 힘들다면 ‘누군들, 무슨 일인들 힘들지 않겠어!’라고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낙관적일수록 문제 중심적 대처를 하기 쉽지만 어떤 방식이든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 태도가 결여되어 있다면 ‘회피’로 흐르기 쉽다. 즉, 자신의 능력이나 태도는 돌아보지 않고 쉬운 일이나 직장만을 찾으려 하거나 반대로 맞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계속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수용은 물론 변화가 모두 필요하다. 세상은 결코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의 태도가 중요하다. 그러한 태도를 갖춘 사람을 우리는 어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뜻을 펼칠 생각도 없이 주어진 상황이나 문제를 있는 그대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수용이 아니라 회피일 뿐이다. 우리는 때로 외부에만 자신을 맞춰갈 것이 아니라 자신에 맞게 외부를 변화시키고 창조해낼 필요가 있다.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어느 대학병원 진단검사의학과에 근무하는 교수가 있었다. 그는 늘 채혈실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이들이 우는 것은 당연하니까 불편함을 감수하는 쪽으로 적응해 간다. 하지만 그 교수는 좀 더 쾌적한 근무환경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울음 잡는 동영상’이었다. 자신의 아이들이 피를 뺄 때 울지 않는 점에 착안해 이를 동영상으로 만든 것이다. 울지 않고 피를 빼는 또래 아이들의 화면을 보며 검사실에 들어온 아이들은 덩달아 울지 않게 되었다. 물론 많은 아이가 여전히 울음을 터뜨렸지만 좀 더 밝고 조용해진 근무환경을 그는 능동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능동적 문제해결과 능동적 수용이 통합된 스트레스 대응을 나는 ‘성장 중심적’ 대처 방식이라 부른다. 이는 능동성에 바탕으로 두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둔 방식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문제에 순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문제에 대응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 (mt@mentaltrain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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