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민주화세대 ‘거물’ 대거 퇴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시대는 끊임없이 변한다. 국회는 4년에 한 번씩 확인할 뿐이다. 표심으로 확인하는 4년간의 누적된 변화는 충격적일 때가 많다. 자의든 타의든 대폭의 인물 교체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18대 국회도 큰 세대 교체를 예고하고 있다. 시대를 풍미했던 정치 리더들이 이번에 대거 물러난다.

우선 1987년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직·간접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정계에 입문한 이른바 민주화 운동 정치세대가 뒷자리로 빠진다. 진작에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해찬 전 총리와 임채정 국회의장이 대표적이다. 이 전 총리는 88년에, 임 전 의장은 92년에 국회에 처음 들어왔다. 그 뒤 선수를 쌓아 가며 민주당 정치를 쥐락펴락했다. 역시 불출마를 선언한 김원기 전 국회의장의 이력서엔 한국 야당의 변천사가 담겼다. 79년 신민당 의원으로 배지를 단 그의 당적은 민한당-평민당-민주당-열린우리당-통합민주당으로 바뀌었다.

한나라당에서도 김덕룡 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하면서 여의도를 떠나게 됐다. 김 의원은 YS계, 즉 민주계의 리더였다.

낙선한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YS가, 정동영 전 장관은 DJ가 발탁한 인사다. 정동영 전 장관은 대선 때의 경쟁자였던 이명박 대통령이 사실상 그의 저격수로 전략공천을 한 정몽준 의원에게 일격을 당했다. 경남 사천에서 낙선한 한나라당의 공천 주역 이방호 사무총장도 선거운동 과정에서 박사모가 대거 몰려가 낙마 운동을 펼치는 등 친박세력에게 저격을 당한 경우다.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민주당 김근태 의원과 민주화 운동으로 사형 선고까지 받았던 유인태 의원도 고배를 들었다. 한나라당 내에서 2인자로 불렸던 민주화 운동 세대인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도 마찬가지로 낙마했다.

한나라당에선 민정계로 불리는 그룹의 퇴조가 보인다. 87년 체제에서 여당은 민정당이었다. 강재섭 대표는 공천 갈등의 와중에 출마를 포기했다.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과 이상배 의원은 공천에서 탈락했다. 산업화 세대이기도 한 이들은 지난 20여 년간 한나라당의 한 축을 차지해 왔다.

중앙대 장훈 교수는 “87년 체제가 성립되면서 들어왔던 산업화·민주화 세대가 대부분 물러나는 것”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으로 이들 시대의 유효기간이 다했다는 것을 확인한 데 이어 의회 권력까지 교체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반대로 물러났던 인사들이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보수 진영이 확대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친박근혜’ 정서에 호소하면서 서청원 전 대표와 홍사덕 전 국회부의장이 각각 비례대표와 지역구 의원으로 국회에 재입성하게 됐다. 이들은 2004년 탄핵의 광풍 속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국회를 떠나야 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도 국회를 떠난 지 5년여 만에 여의도로 복귀하게 됐다. 경희대 정진영 교수는 “인물 교체가 국회를 좀 더 실용적이고 타협적으로 바꿀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고정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