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대장정>11.볼가그라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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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로 들어가는 길은 물없는 사막의길. 어쩌다보니 무리와 양떼가 나타나 대지에 생명이 있음을 보여줄뿐사막길은 죽은듯 고요할 따름이다. 물이 말라 죽음의 바다가 되어 가고 있다는 아랄 해와 카스피해를 지나 러시아 볼가강이 만들어내는 델타에 이르면 사흘동안 사막길에 찌든 몸과 마음이 일 시에 씻겨지고 청량한 기분이 되고만다.
볼가강은 유럽 최대의 강.유역의 넓이가 서유럽 전체 면적과 맘먹는다고 하니 얼마나 큰 강인지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볼가는모스크바에서 고리키.카잔.사라토프 등을 경유해 카스피 해로 간다음,운하를 거쳐 흑해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수상 교통의 대동맥이다.볼가그라드는 볼가강 연안의 대도시.그 이름처럼 볼가강의 오른쪽 강변으로 70㎞에 걸쳐 길게 위치하고 있으며 볼가와 돈강을 잇는 운하의 기점이기도 하다.
이 도시는 16세기에 건설돼 러시아 제국의 군사 요충지 역할을 했으며,17세기에는 농민반란을 주도한 스텐카 라진의 활동무대가 되기도 했다.피터 대제 치세에 와서는 통상의 거점으로 번성해 「차리친(황제의 市)」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고 한다.그뒤 스탈린이 집권한 시기인 25년부터 61년까지는 스탈린그라드로,61년 이후에는 볼고그라드로 불리다가 최근에 이르러 볼가그라드로 개칭됐다.
러시아의 중심부에 가까이 다가온 탓일까,도시의 외관에서는 전통과 권위의 냄새가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그것은 극동 지방의 19세기식 도시미관이나 중앙아시아의 동양적 체취와는 또다른 모습이었다.건물과 동상의 생김새들이 장엄하고 육중해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데,그것이 바로 제국의 위용과 대륙의 기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제야 비로소 러시아 제국의 진면목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었다.
볼가그라드는 상처받은 도시다.깊은 상흔이 오늘도 도시 곳곳에잔존한다.그러나 그 추억은 찬란한 슬픔으로 남아있다.스탈린그라드 대공방전.독일군에 의해 도시가 파괴되고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그 싸움은 러시아의 자존심을 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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