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용산 조립PC ‘용팔이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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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서울 용산 전자상가의 3대 조립PC 업체 중 하나였던 이지가이드가 지난달 말 부도를 냈다. 7일 서울 선인상가 21동의 옛 이지가이드 자리에 재개장 작업이 한창이다.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조립 PC의 메카라는 서울 용산이 ‘이지가이드’ 쇼크에 흔들리고 있다. 이 지역 3대 조립업체 가운데 하나로 꼽힌 이지가이드의 지난달 부도가 일파만파를 낳고 있는 것이다. 7일 둘러본 용산 선인상가 관련 매장은 이날 재오픈을 준비하는 인수업체 직원 몇몇만 눈에 띌 뿐 썰렁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납품업체와 소비자의 피해는 60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대표 선수가 쓰러진 데 따른 신뢰 실추는 돈으로 따지기 힘들다. 용산 상인들은 조립 PC 시장의 어려움이 가속될까봐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무너진 이지가이드 신화=이지가이드는 1990년대 중반 ‘우리집’이라는 상호로 서울 용산의 선인상가 귀퉁이에 자리잡았다. 당시 용산은 값만 묻고 돌아서는 고객의 뒤통수에 험악한 언사가 날아들던 시절이었다. 컴퓨터에 문외한이다 싶으면 바가지를 쓰게 마련이었다. 당시 하이텔·천리안 같은 PC통신에선 PC 조립 동호인들이 적잖이 활동했다. 그들은 제품 정보와 함께 용산의 가격·업소 정보를 공유했다. 김범수 비티씨정보통신 차장은 “‘우리집’은 최저가를 고수하는 양심적인 업소로 입소문을 통해 이름이 났다”고 회상했다.

2000년대 들어 상황이 변했다. PC통신이 인터넷 포털로 진화하면서 ‘다나와’ ‘에누리’ 같은 온라인 가격비교 사이트가 기세를 떨쳤다. 한국의 주연테크나 미국의 델처럼 조립PC 못지않은 가격 경쟁력을 갖춘 대형 업체들에 PC방 체인 같은 큰 시장도 빼앗겼다. 일반인들도 홈쇼핑 채널에서 삼성·삼보 등 대기업 제품을 10개월 무이자로 살 수 있었다. 이런 위기를 맞아 ‘우리집’은 이지가이드로 상호를 바꾸며 온라인 판매를 강화했다. 넓은 매장에 다양한 제품을 갖추고 온·오프라인으로 부품과 조립 완제품 판매에 나선 것이다.

박리다매이면서도 신용카드 결제가 돼 지난해 매출이 450억원을 넘어설 만큼 성장 가도를 달렸다. 정세희 다나와 팀장은 “이지가이드는 아이코다·컴퓨존 등과 함께 용산의 미래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고 말했다. MP3 같은 미니 기기나 디지털 카메라는 아직도 호객행위·바가지가 횡행하는 ‘용팔이’ 마케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 비해 PC 상가 쪽은 평판이 비교적 나았다. 투명한 온라인 거래로 신뢰를 쌓은 덕이었다. 

◇조립 PC 시장 흔들=그런 이지가이드가 지난달 25일 부도를 냈다. 이 회사 대표가 재고를 처분한 뒤 종적을 감췄다고 인수업체 측은 말한다. 회사 홈페이지(온라인 쇼핑몰)까지 지난달 20일 ICEL이라는 업체에 넘겼다. 이지가이드의 영업중단은 용산상가의 신진대사에 큰 지장을 줬다. 홈페이지가 2일부터 열렸지만 인터넷 주소만 같을 뿐 다른 업체다. 종전에 물건을 산 소비자는 고장이 나면 부품 수입업체에 직접 애프터서비스를 요청해야 할 판이다. 입금하고 물건을 받지 못한 피해자도 있다. ICEL의 정준호 사장은 “계약 직후 부도가 나 당황스럽다”며 “회원 정보나 부품 공급업체 명단을 건네받지 못해 오프라인 매장은 일러도 이달 중순께나 돼야 문을 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지가이드의 좌초는 제2, 제3의 이지가이드를 꿈꾸던 많은 이곳 상인에게도 심리적으로 큰 좌절을 안겼다. 한 상인은 “이지가이드 정도의 큰 매장이 맥없이 무너지자 금융권의 돈줄 죄기가 더 심해졌다”고 하소연했다. 일부에선 “특정 업체의 투자 및 영업 실패를 일반화할 필요는 없다”는 신중론도 있다. 그러나 이지가이드 쇼크가 수년 전부터 내리막길을 걸어온 용산 조립 PC 업계에 부담을 가중시키지 않을까 우려된다. 아이코다 관계자는 “아직 매출이 확 줄거나 부품업계가 납품을 거부하는 식의 혼란은 없다. 고객 서비스에 더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글=김창우 기자,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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