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90년 9월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당시 소련 외무장관으로부터 韓蘇 수교방침을 통보받고 핵무기 개발을 본격 추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당시 북한은 韓蘇수교를 저지하기 위해「몇가지 형태의 무기들」을 만들 수밖에 없다고 판 단,핵개발을무기로 소련을 위협하다 실패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러시아 국제관계대학 총장이자 외교문제 권위자인아나톨리 토르쿠노프 박사가 외교문제 전문가 E 우핌체프와 공동으로 한반도에 관한 옛소련.러시아측 미공개 공식문서들을 모아 최근 발간한 『한반도문제:새로운 시각』이란 저서 에서 확인됐다.다음은 『한반도…』중 韓蘇수교 비화를 담은「고르바초프 新사고와 한반도 안정문제」 부분 요약.
80년대말 소련이 선택할 수 있는 한반도 정책에는 세가지가 있었다.첫째는 종전처럼 북한을 전폭 지지하는 것으로 한반도에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2개의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것,둘째는 한국을 정치.외교적으로 승인하는 것,셋째는 보다 현 실적인 방법으로 기존의 對북한 친선관계를 유지하면서 한국과의 경제.정치.
문화협력을 외교적 승인의 수준으로 높이는 것이었다.결과는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한국을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협력상대자로맞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과 소련이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기에 앞서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이 90년9월2~3일 평양을 방문했다.셰바르드나제장관은 김영남(金永南) 북한 외교부장에게 소련이 한국과 공식 외교관계를맺을 것이라고 통보했다.셰바르드나제장관은 한국과 경제협력을 강화해야 하고 소련 사회의 여론이 공식 외교관계 수립을 원하고 있으며 한국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을 높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역설했다.
이에 대해 평양당국은 한국과 소련의 외교관계 수립은 ▲한반도분단을 공고화하고 통일의 저해요인이 된다 ▲북한을 국제사회로부터 격리시킨다 ▲북한의 사회주의 세력을 무너뜨리기 위한 한국-미국-일본의 동맹이 형성된다 ▲한국과 소련의 국 교정상화는 북한으로 하여금 자력으로「몇가지 형태의 무기」를 만들도록 강요할것이다 ▲한민족의 통일노력을 좌절시킬 것이라고 반대입장을 분명히했다. 북한 언론매체는 韓蘇수교와 관련해 反蘇캠페인을 전개했으며,소련 지도부와 소련의 정책을 신랄히 비판했다.소련 지도부내에서도 한가지 목소리를 낸 것은 아니었다.고르바초프대통령 측근이었던 예브게니 프리마코프의 경우 국교정상화에 적극 반 대했으며(그는 후에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 소장으로 한국과 교류를적극적으로 지원했다),셰바르드나제장관을 비롯한 외무부도 서두르지 않는 쪽을 선호했다.특히 셰바르드나제장관은 88년 5월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영남을 만나 「공산주의자로 서」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어 점진적 정상화를 주장할 수밖에 없었다.대통령 측근과 외무부 직원들 간에 주도권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그러나 韓蘇 관계정상화는 한반도 문제에 관해 소련 정치권에 새로운 가능성 을 열어주었다.이는 한반도 안정방안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이라는 입장에서도 그렇고 소련의 국가적 이익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러했다.
[모스크바=聯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