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수사 이모저모-崔圭夏씨가 풀어야할 의문점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5.18」고소.고발사건 수사결과 최규하(崔圭夏)前대통령은 80년 당시 정권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 대목마다 전두환(全斗煥)보안사령관과 新군부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그들의 쿠데타가 가능했음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崔前대통령은 당시 주요 현안을 둘러싼 新군부측의 강압 여부와 하야 당시 압력 유무등 수사상 나타난 다섯가지 의문점에 대한 진실을 역사와 국민앞에 밝혀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의문1=崔前대통령은 80년3월말 신현확(申鉉碻)총리로부터공석인 중앙정보부장에 민간인을 임명해 정보기관을 民과 軍으로 양립시켜 상호견제케 하는 것이 좋겠다는 강력한 건의를 받았다.
그러나 崔前대통령은 4월14일 총리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全씨를 중앙정보부장 서리로 전격 겸직 발령했고,全씨는 이때부터 국내외 모든 정보를 장악,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다 5개월만에 대통령에 취임했다.
◇의문2=수사발표문엔 5월17일 崔前대통령이 全보안사령관으로부터 보안사가 작성한 시국수습 방안을 보고받은뒤「계엄확대 방안만 수용하고 국회해산.비상기구 설치등은 논의하지 말 것」을 강력히 지시한 것으로 돼 있다.그럼에도 이희성(李熺 性)계엄사령관은「모든 정치활동과 정치적 발언을 금지」하는 내용의 계엄포고령 10호를 18일 오전1시 발령해 이 과정에서의 崔前대통령의역할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의문3=全보안사령관은 5월17일 김대중(金大中)씨등 정치인들을 소요 배후조종및 권력형 부정축재혐의로 체포.조사하고 18일 김영삼(金泳三)신민당총재를「가택연금」조치했다.
崔前대통령은 자신의 지시를 어긴 全씨에게 당시 어떤 조치를 취했고 과연全씨의 이같은 조치가 불가피했었다고 파악했는지도 밝혀야 할 부분이다.
◇의문4=崔前대통령은 대통령을 보좌한다는 명목으로 주요 행정정책을 수립해 행정 각부에 시달,사실상 내각을 조정.통제하던 국보위 상임위원장에 全씨를 임명해 이미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全씨에게 날개까지 달아줬다.
왜 대통령이 보안사령관.합수본부장.중앙정보부장서리를 겸임한 군인에게 이처럼 막중한 직책을 맡겼고 이 과정에서 新군부측 압력이 없었는지도 의문이다.
◇의문5=崔前대통령은 6월12일 특별담화를 통해『10월말까지개헌안을 국민투표로 확정,81년 상반기중 국민투표를 통해 정권이양을 하겠다』는 개헌 스케줄을 발표했음에도 8월16일 돌연 하야하고 말았다.
〈金佑錫.李相列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