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세월따라>모시의 본고장 충남서천군 한산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충남서천군한산면은 여름철 옷감중 단연 으뜸으로 치는 모시의 본고장. 한산면 장터에서 새벽마다 열리는 모시장은 이 고장에서가장 활기넘치는 곳이다.특히 요즘같이 시원스런 모시적삼이 그리워지는 한 여름에는 더더욱 그렇다.
끝자리가 1과 6자가 들어가는 날에 5일마다 열리는 한산면 모시장은 새벽 먼동이 트기 전 모시포 보따리를 머리에 인 베틀아낙들이 어둠속을 뚫고 하나 둘씩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모시장이 새벽에 서는 것은 새벽 이슬의 습기를 머금은 모시필을 백열등에 비춰보아야 품질을 제대로 감정할 수 있다는 오래된관습 때문이다.
2백여평 남짓한 장터에는 모시풀을 말린 모시의 원재료 태모시와 태모시에서 실을 뽑아낸 모시굿,모시포등을 놓고 흥정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요즘 장터에서 하루에 거래되는 모시포의 양은 성수기를 맞아 다소 많은 3백필쯤 되고 그만큼의 모시를 만드는데 필요한 태모시와 모시굿도 함께 거래되고 있다는 것이 한산모시놀이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인 구자홍(具滋弘.70)씨의 설명이다 .
최근 모시 수요의 확산과 함께 모시를 짜는 농가 수도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자 서천군청은 93년8월 한산면 지현리 29번 국도변에 「한산 모시관」을 개관해 모시를 관광상품화하고 있다.
한산 모시가 여유있는 멋쟁이들의 대접을 톡톡히 받는 요즘같은여름철엔 모시풀 재배에서부터 모시짜기까지 모시의 제작과정을 일관되게 보여주는 이곳 전통공방에 여행객들의 발길이 늘게 마련.
이곳에서 모시짜기를 시연하고 있는 충남도 지정 인간문화재 나상덕(羅相德.62)씨는 『예전에는 모시를 못짜면 시집 못간다고어른들이 놀려 대부분의 처녀들이 모시를 짤 줄 알았다』며 『나자신도 50여년째 모시를 짜고 있지만 고운 세 모시 한필 짜서팔 때면 매번 마치 자식을 떠나 보내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한산은 지금은 서천군에 있는 읍 2개와 면 11개중 하나의 면에 불과하지만 조선시대엔 한산군으로 지금의 한산면.화양면.마산면.기산면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한산 모시」는 지금의 한산면에 국한되지 않고 과거 한산군 지역의 특산물을 의미한다.
한산 모시의 특징은 올이 가늘고 순백색의 빛깔이 고와 조선시대부터 전국에 이름을 떨쳤으며 모시장이 한산에 서면서부터 모시는 한산 모시로 통칭되기 시작했다.
60년대초 서천군에서만 6만8천필 넘게 생산되던 연간 모시 생산량이 값싼 화학섬유의 대량 보급과 함께 모시 생산량도 내리막 길로 접어들었다.80년에는 모시생산량이 5천필 이하로 명맥만 겨우 유지하는 형편으로 전락했다.
한산 모시가 다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부터.소득수준 향상과 함께 여름 고급 옷감인 모시에 대한 수요가 다시일어나면서 한산 모시를 생산하는 농가가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세모시 한필 짜는데 40여일이 걸릴만큼 한산 모시한올 한올에는 아낙네들의 인고가 배어 있었다.
우선 모시풀의 속대 껍질을 벗겨 물에 우려내고 햇볕에 하얗게바래게 한 다음 부드럽게 비빈 뒤 다시 물에 불려 실의 올을 한가닥씩 얻어낸다.이 과정을 거치면 건조된 모시인 태모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이 태모시를 다시 적당한 습도를 맞춰가며 이빨로 가늘게 쪼개는 「모시째기」를 한뒤 올과 올의 끝을 무릎 위에 놓고 손바닥으로 이어서 비벼나가는 「모시삼기」 작업을 해야한다. 『이빨로 태모시를 째 모시올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한산에는 앞니 2개가 손상된 아낙이 많다』는 서천군청 문화공보실 오천환(吳千煥.35)씨의 말에서 모시처럼 칼칼한 한산 아낙들의 정성이 느껴진다.
韓山=高昌護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