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너의 똥이 내 물고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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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선우(1970~) '너의 똥이 내 물고기다' 부분

목욕탕에서 갓난아이를 품에 안은
김 오르는 엄마들을 만날 때가 있다
알몸의 엄마가 안고 있는 알몸의 아가들
이뻐라
밤벌레 같다

속살 찰진 생밤을 깨물다가
딱 만나게 되는 밤벌레들
육덕 좋은 엄마들의 흰 종아리 같고
실핏줄 말갛게 들여다보이는 갓난 아가의 동그란 알몸 같은
생밤 한 알 속
후끈하게 고여 있는 살냄새
신라적 혜공 스님은
똥 누는 원효를 보고 그랬다 한다
니 똥이 내가 잡은 물고기라카이(후략)



지난 가을 누군가 밤 한 됫박을 주어서 작업실 멍석 위에 올려 두었다. 다음날 손님이 몇 분 찾아왔다. 멍석 위에 앉아 차를 끓이는데 차 향기가 우련 좋았다. 그때 한 손님이 말했다. 요놈들 봐라…. 멍석 위에는 하얀 빛의 동글동글한 벌레들이 열 마리도 더 넘게 앉아 있었다. 어디서 왔을까. 당황하는 내게 손님이 말했다. 밤벌레예요. 세상에, 이렇게 착하고 맑은, 순하고 어질게 보이는 벌레가 있다니…. 우리는 손바닥 위에 그 벌레를 올려두고 바라보며 차를 마셨다. 마음에 따라서 구린내 나는 똥이 은빛 물고기가 될 수도 있다.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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