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칼럼>克金論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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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대중(金大中)씨처럼 말을 잘하는 정치인도 드물다.수사(修辭)만이 아니라 정연한 논리와 지적 바탕도 갖췄다.많은 사람들이우직스럽게도 그저 연령만을 기준으로 「세대교체」를 외쳐댈 때 그는 이렇게 맞받아 쳤다.
『변화에 적응 못하면 젊어도 노인이고,변화에 적응하면 노인도젊은이다.』 세대교체론만 놓고 보자면 이 논리가 정답에 더 가깝다. 그는 이런 멋진 말도 한 바 있다.『사람에겐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행동이 말과 일치되지 않는다는데 있다.분명히 지금 그는 자신의 말과는 달리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되느냐를 더중요하게 여기는 듯한 행동을 하고 있다.정계은퇴를 그 잘하는 말로 얼마나 여러번 공언했던가.
심지어 지난해 4월엔 중.고교생들을 앞에 놓고도 『정계은퇴는번복할 사항이 아니다』고 말한 바 있다.그랬던지라 그가 요즈막에 동네북처럼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정계복귀와 신당창당이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돼버린 오늘,그의 말뒤집기와 언행불일치를 비판이나 하고 있는 것으론 충분하지 않다.
나무위에 올라간 상대를 끌어내린다고 해서 자신이 저절로 나무위에 올라가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그의 정계복귀와 신당창당이 정치발전에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한다면 일반 국민이 아닌 정치인으로서는 적어도 이제부터라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정치적 대안(代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김대중씨뿐 아니라 3金의 정치가 다같이,변화된 시대와는 걸맞지 않는 낡은 정치인 것만은 분명하다.과연 현재의 그 어느 정당이 정당으로서의 이념적.정책적 정체성(正體性)을 갖췄나.정치적 패권과 실리,인맥을 좇아 그저 임시적.편의적으 로 동거하는패거리정당,붕당(朋黨)들일 뿐이 아닌가.
김대중씨의 신당창당이 명분도,설득력도 약한 한가지 이유도 신당이라면서도 민자당과 똑같이 그 구성원들이 정당으로서의 이념적.정책적 동질성을 갖추지 못한「혼숙(混宿)」의 정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있다.그 점에서 굳이 비교하자면 차라리 자민련(自民聯)이 동질성에선 상대적 우위를 갖추고 있다.
김대중씨 정계복귀와 신당창당을 비판하는 가장 큰 논거인 지역분할의 고착화나 지역감정의 심화만해도 실은 김대중씨나 그의 신당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문민정부 들어서도 정계의 비호남연합대 호남구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달 라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역통합 노력은 커녕 시간이 갈수록 여당쪽에선 이 구도를 고착화하려는 경향을 보여 왔다.그 전략이,그 비호남연합구도가 개혁상의 문제점으로 해서 세갈래로 갈라졌고,그를 활용해 김대중씨가 억눌러왔던 정치적 욕구 를 분출시킨 것이 바로 오늘의 상황일 뿐이다.
민자당은 지방선거에서의 참패에도 불구하고 오월동주(吳越同舟)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할 기미조차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오히려그나마의 개혁성향마저 흐려지면서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양상마저보여주고 있다.김대중씨의 신당 역시 DJ가 개 혁을 공언하고는있으나 지역당.인맥당으로서의 태생적 한계를 안고 출발하고 있어시대의 요구를 충족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분명하다.경쟁적인 제3의 길을 열어야 하는 것이다.김대중씨도 정치적 후계자 문제와 관련,『신진대사는 강제적이고 의식적으론 안된다.다음 세대들의 노력이 부족하거나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비판적 대안이 되려면 누가 키워줄 것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커야 한다.드리워진 그늘 속에서 마른 땅만 밟으려해서는결코 성장할 수 없다.
***혼자크는 代案 기대 희생을 각오하고 그 희생을 저력으로축적해나갈 수 있는 용기와 의지가 있어야 한다.양金이 오늘날과같은 영향력을 갖게 된 것도 다름아닌 희생의 축적 때문이 아닌가. 여건도 더할나위 없이 좋다.유권자의 반이상이 지지정당을 찾지 못한채 방황하고 있다.中央日報 여론조사에 따르면 호남에서조차 김대중씨의 정계복귀와 신당창당에 각각 47%,35.5%의반대여론이 있다.
YS의 민자당,DJ의 신당,JP의 자민련만으론 새 시대의 정치욕구를 담아낼 수 없다.그저 비난뿐인 대안없는 反3金이 아닌정체성이 뚜렷한 극김(克金)의 정치적 선택지(選擇肢)가 나와야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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