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절반이 폐경前 발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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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선 어떤 여성들이 유방암에 잘 걸릴까?

첫째, 초경이 정상보다 빨랐거나 폐경이 남들보다 몇년 늦었다면 발생위험이 높다. 둘째,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았거나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지 않은 여성도 환자가 되기 쉽다. 셋째, 아직 폐경 이전의 나이라도 안심해선 안 된다. 국내 유방암 환자의 절반은 폐경 이전(49세 이하)의 낮은 연령대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하이난(海南)섬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태평양 종양학 회의에선 폐경 전 유방암 환자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가 집중 논의됐다.

유방암이 확인되면 폐경 여부와 상관없이 보통 수술→항암제 주사→타목시펜(항암 호르몬의 일종) 복용 순서로 대처해 나간다. 폐경 후 환자는 타목시펜을 5년 쯤 먹은 뒤 '레트로졸' 등 최근 새로 개발된 항암 호르몬을 복용해 생명을 연장시킨다. 그러나 폐경 전 여성에겐 '레트로졸'을 처방하지 못했다. 이 '레트로졸'류(類)의 약들이 폐경 전 유방암 환자의 난소에서 왕성하게 분비되는 에스트로겐을 막기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폐경 전 여성이 '레트로졸'류 약을 복용하면 유방암과는 상극(相剋)인 에스트로겐이 오히려 더 많이 분비된다는 연구결과까지 나왔다.

그러면 폐경 전의 젊은 여성 환자에게 '레트로졸'류 약들은 무용지물인가?

이에 국립암센터 종양내과 노정실 박사는 "고의 폐경을 시키는 방법이 있다"고 제안한다.

그는 유방암이 재발한 여성 33명(27~50세)에게 '졸라덱스'라는 주사약을 4주에 한번씩 주사해 인위적으로 폐경을 일으켰다. 졸라덱스를 복용한 여성들은 마치 난소제거 수술을 받은 것처럼 예외없이 폐경을 맞았다. 그러나 약 복용을 중단하면 바로 생리가 재개됐다. 이렇게 고의 폐경을 맞은 환자들은 '레트로졸'류 약들을 매일 한알씩 복용해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다.

노박사는 "유방암 재발을 막기 위해 복용하는 타목시펜은 보통 5년이 약효의 한계"이며 "그 이후에도 유방암 재발 위험이 여전히 높으므로 이를 예방하기 위해 '레트로졸' 등 다른 항암 호르몬제를 적극 활용할 것"을 권했다.

한편 이번 회의에서 유방암 발생 위험은 첫 출산 연령.초경 연령.폐경 연령.모유를 먹이는지 여부.경구 피임약 복용 여부.호르몬 대체요법 사용 여부.체중.키.음주량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통계치(그래픽 참조)가 제시돼 관심을 끌었다. 이는 여성이 에스트로겐에 노출되는 기간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학계의 설명이다.

중국 하이난섬=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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