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풍속도] 인터넷 ‘총선 굴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영국의 권위지 가디언은 2003년 2월 노무현 대통령 취임 기사에 ‘세계 최초의 인터넷 대통령 로그온하다(World’s first internet president logs on)’란 제목을 달았다. 세계가 인정했듯 인터넷은 대통령을 만든 일등공신이었다. 2004년 4월 탄핵 정국에서 치러진 총선에서도 인터넷의 위력은 발휘됐다. 탄핵 반대를 외치는 인터넷 카페가 하루 수십 개씩 생겨났다. 시민기자와 인터넷 논객들은 ‘악한 강자(한나라당)’와 ‘선한 약자(열린우리당)’ 구도를 확대 재생산했다. 그 집단 여론이 총선 판도를 흔들었다.

그러나 2008년, 한국의 인터넷은 침묵 중이다. 대신 음악과 춤, 애니메이션으로 무장한 요란한 홍보물이 인터넷 공간을 차지했다. 여야는 이번에 정당별로 8억~12억원을 인터넷에 쏟아 부었다. 인터넷 광고 비중이 인쇄 매체까지 넘어섰다.

하지만 식어버린 ‘넷심’은 요지부동이다. 그 지표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우선 인터넷 선거 현장을 찾는 네티즌들의 발길이 끊겼다. 웹사이트 평가 전문 랭키닷컴에 따르면 한나라당 홈페이지를 방문한 네티즌 수(3월의 한 주 평균 방문자 수)는 2004년 34만여 명에서 올해 6만여 명으로 떨어졌다. 격세지감을 더욱 느끼는 쪽은 과거 인터넷 덕을 톡톡히 본 진보 계열의 정당·매체들이다. 통합민주당의 경우 방문자 수가 19배나 차이 나게 줄었다. 오마이뉴스나 인터넷 한겨레 방문자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래픽 참조>

선거에 변수가 될 거라던 사용자 제작 콘텐트(UCC)쪽도 썰렁하긴 마찬가지다. UCC 전문 판도라TV나 다음 ‘TV 팟’이 제공하는 ‘베스트 동영상’ 중 선거 UCC는 찾아보기 어렵다. 3월 31일 ‘TV 팟’에 오른 동영상 61개를 분석해 보니 내용도 ‘후보의 하루’나 ‘거리 유세’ 등 홍보 일색이었다. 평균 클릭 수도 고작 34회에 불과했다.

통합민주당 최재천 의원은 “17대 때와 달리 인터넷 수혜를 입기 어려워 발로 뛰는 오프라인 선거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인터넷 게시물에 대해 고발·수사 의뢰하거나 경고조치한 건수 역시 2004년 234건에서 올해 24건으로 감소했다.

이렇게 인터넷 열기가 식어버린 가장 큰 원인으로는 전반적인 ‘선거 무관심’이 꼽힌다. 지난달 28일 중앙일보 조사에 따르면 ‘꼭 투표할 것’이란 유권자 비율이 4년 만에 10%포인트 이상 줄었다.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되고 선거법 적용이 엄격해진 것도 한 이유로 꼽힌다.

경희대 윤성이(정치외교학) 교수는 “이번 총선에선 낙선운동이나 탄핵 같은 전국 이슈가 없는 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연세대 윤영철(신문방송학) 교수는 “인터넷은 기본적으로 정서의 매체”라고 전제한 뒤 “인터넷과 방송이 합작해 ‘공공의 적’을 만들어냈던 2004년과 달리 이번엔 일방적으로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상복·정강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