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 이헌재 사단에서 빼달라” … 금융계, MB 질타에 권력이동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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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근우 하나금융지주 부사장이 그동안 맡아왔던 전략 업무에서 최근 손을 뗐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일을 맡을 것이라 했지만 별도의 인사 발령은 없었다. 서 부사장의 거취는 곧바로 금융권의 입방아에 올랐다. 그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이런저런 인연으로 얽힌 인맥을 뜻하는 ‘이헌재 사단’의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이 전 부총리는 1998년 금융감독위원장으로 19년 만에 공직에 복귀하면서 한국신용평가 사장 시절(85~91년) 부하 직원이었던 서 부사장을 기업구조조정 책임자로 불러들였다. 당시 서 부사장은 39세였다. 서 부사장 외에도 당시 영입한 외부 인사로는 이성규 하나은행 부행장(한신평 출신), 최범수 신한지주 부사장(한국개발연구원 출신) 등이 대표적이다.

금융계에서는 이들과 상당수의 전·현직 재경부 후배, 금감위원장 시절 영입파 등을 이헌재 사단으로 분류한다. 대부분 금융에 관한 한 내로라하는 기술자들이고, 외환위기 당시 부실 금융회사의 환부를 도려내는 어려운 일을 해냈다.

서 부사장의 낙마를 두고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헌재 사단을 못마땅해했다는데 이제 본격적인 축출 작업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대통령과 이헌재 사단은 그다지 궁합이 맞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3월 31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금융산업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데다 금융회사가 금융기관이라 불리며 권력기관 행세를 해온 것은 관치금융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장을 쥐고 흔들어온 금융관료들을 질타한 것이다. 앞서 3월 25일에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인사청탁을 예로 들며 “그러니까 ‘모피아(옛 재정경제부, 특히 금융정책국 관료를 미국 범죄집단인 마피아에 빗댄 말)’라는 말을 듣는다”고도 말했다.

물론 대통령이 이헌재 사단을 직접 언급한 적은 없다. 그래서 이헌재 사단의 축출이라는 표현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경험에 비춰볼 때 이헌재 사단에 우호적이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기업을 운영할 당시 이 대통령은 ‘을’의 처지였다. “관치 때문에 금융회사가 권력기관처럼 행세했다”는 말도 그런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이 대통령의 대학 2년 후배인 이팔성 서울시립교향악단 이사장은 “평소 지론을 되짚어 보니 대통령이 각종 인맥으로 이뤄진 이헌재 사단을 모피아의 대표선수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헌재 사단으로 상징되는 관료집단의 배제는 인사에서 잘 드러난다. 이미 금융위원장(전광우)·부위원장(이창용 서울대 교수) 같은 요직에 민간 출신을 기용했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도 관료 출신이지만, 비교적 무색무취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이런 분위기는 앞으로 금융공기업 인사에도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헌재 사단이라는 게 애초에 없었다는 항변도 있고, 발을 빼는 사람도 있다. 이헌재 사단으로 불렸던 전 고위 관료는 “이헌재 사단의 실체가 뭐냐”며 거리를 뒀다. 이헌재 전 부총리가 중용했던 박해춘 우리은행장도 “앞으로는 (내 이름을) 이헌재 사단에서 빼 달라”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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