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만 있고 기술 없는 씨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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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홍만이 김영현을 꺾고 백두장사에 오른 뒤 익살스레 '테크노 댄스'를 추며 자축하고 있다. [함양=연합]

"기술은 사라지고 힘만 판친다."

민속씨름의 최고수 가리기가 갈수록 싱거워지고 있다. 화려한 테크닉보다는 덩치로만 밀어붙이는 초(超)거구들의 독무대가 되면서다. 박진감과 재미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13일 경남 함양체육관에서 열린 함양장사씨름대회 백두장사 결정전.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LG.2m18㎝)이 '원조 골리앗' 김영현(신창.2m17㎝)을 꺾고 130대 백두장사가 됐다.

지난해 12월 인천 천하장사대회 이후 올 설날대회와 이번 대회까지 결승전은 모두 두 사람의 대결이었다. 이날 경기는 네번의 무승부 끝에 최홍만이 김영현을 밀어치기로 넘어뜨려 맥없이 결판이 났다.

4강전에서 상대 전적이 5승1패로 우세한 '모래판의 황태자' 이태현(28.현대)까지 눌러 최강자임을 재확인한 최홍만은 "세번 연달아 김영현을 이겨 기분이 좋다. 올해는 전관왕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결승전 시작 전에는 "오빠-" "최홍만 잘해라" 등 여성팬들 목소리가 터져나왔지만 무승부의 힘겨루기가 이어지자 "재미없다"는 야유가 관중석에서 쏟아졌다.

현장에 있던 씨름계 한 관계자는 경기 직후 상기된 표정으로 "실망스러운 경기를 계속하는 최홍만과 김영현은 씨름판의 발전을 위해 없어져야 한다"는 극언까지 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렇게 기술 개발을 외면한다면 팬들이 모두 떠날 것"이라며 "씨름단들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거구들에게 유리한 현재의 샅바잡기 방식 등 규정을 바꾸는 일(본지 3월 10일자 S3면)이 그래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홍만은 "겨울훈련 때 기술 훈련에 주력했는데 체격 조건이 비슷한 김영현을 상대로는 잘 들어가지 않았다. 여름께에는 기술씨름을 확실히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함양=최준호 기자

◇최종 순위= ▶백두장사 최홍만▶1품 김영현▶2품 이태현(현대)▶3품 박영배(현대)▶4품 황규연(신창)▶5품 백승일(LG)▶6품 염원준(LG)▶7품 권오식(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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