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찰, 변할 수 없는 조직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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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찰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아파트에서 10세 초등학생이 대낮에 괴한에게 납치되려다 이웃 주민의 도움으로 화를 면했다고 한다. 경찰청이 ‘아동·부녀자 실종사건 종합대책’을 발표한 지난달 26일 당일 이야기다. 경찰관들은 폐쇄회로(CC)TV에 찍힌 잔인한 폭행 장면을 보고서도 ‘단순 폭행’으로 사건을 얼버무리려 했다. 오죽하면 피해자 부모가 범인을 잡겠다고 직접 나섰겠는가.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국가가 지켜주리라는 생각은 버려야 하는 것인가. 불안한 사회에 살고 있는 국민들이 분개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예정에 없이 수사본부가 차려진 일산경찰서를 방문해 수사 관계자들을 크게 질책했다. 이 사건을 단순 폭력 사건으로 처리한 것은 비상식적이고 안일했다. 오죽했으면 대통령이 취임 한 달여 만에 두 차례나 경찰을 질책했겠는가. 그나마 이날 용의자가 체포돼 다행이다. 하지만 경찰이 무사안일과 구습에 빠져 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겠다.

‘민생치안 소홀’과 ‘초동 대응 미숙’이라는 경찰의 고질적 병폐는 이번 사건에서 여지없이 확인됐다. 이는 경찰청의 대책 발표 때부터 예견됐다. 어린이들에게 연락처 등이 내장된 ‘전자태그’를 부착하고, 휴대전화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장착을 의무화하겠다고 했다. 어린이 안전구역에 CCTV를 대폭 늘려 설치하겠다고도 했다. 경찰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고, 시행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내용으로 가득했다. 철저한 자기반성과 구체적인 대응방안이 보이질 않으니 일선 경찰관들 역시 안이할 수 밖에 없다.

말단까지는 신경이 통하지 않는 거대한 조직이 경찰 조직인 것 같다. 경찰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 임무를 못한다면 줄이거나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대낮에 어린이가 폭행당하고 납치되는데도 방치하니 이제는 학부모들이 학교 문 앞에서 기다려야 할 판이다. 사회가 이렇게 불안해지면 선진국에 도달할 수 없다. 경찰은 민생치안, 특히 아동과 부녀자 대상 범죄 예방에 전력하겠다는 의지를 국민에게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