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달식 서울과학고 교장의‘쓴소리’

중앙일보

입력


4월은 과학의 달이다. 기념일(과학의 날: 21일)까지 만들었지만 아이들에게 과학은 아직 어려운 과목일 뿐이다. 꿈의 목록 중에서 ‘훌륭한 과학자’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역설적으로 과학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이 과학교육이라는 것이다. 올해 영재학교로 전환이 유력시되고 있는 서울과학고의 홍달식(62) 교장과 부산영재학교 신입생인 최재영(16)군을 만나 한국 과학의 현실과 미래를 들어봤다.

“기초과학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과학의 현실을 묻자 홍 교장은 한숨부터 내쉰다. “물리를 공부하지 않은 학생이 물리학과에 가고, 미·적분을 모르는 학생이 공과대학을 가는 현실이다.” 홍 교장은 지금이 한국과학의 위기라고 진단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7차 교육과정에서 과학이 선택과목으로 분류되면서 기초과학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은 두루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인문계는 차치하고 자연계 학생마저 물리 과목을 선택하는 비율이 10명 중 1명꼴에 지나지 않는다”고 개탄한다.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가운데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세상 이치를 꿰뚫을 수 있는 물리가 특히 중요한데….” 홍 교장은 한국과학교육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며 말꼬리를 흐린다. 거기에는 과열된 입시교육에 대한 아쉬움이 담겨있다.
  그는 “과학을 필수과목으로 바꾸는 등 교육과정이 개편되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한다. 흔히 국가 경쟁력 측정에서 빼놓지 않는 것이 영재교육 시스템의 양과 질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아직 멀었다는 것. 그는 “전국에 있는 과학고나 영재학교를 통틀어 한 학년 전체 숫자가 1500명에 불과하다”며 “이는 전체 학생의 0.2%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선진국이 3% 수준임을 감안하면 한참 모자란다는 것이다. 홍 교장은 한 가지 대안으로 전국의 과학고를 모두 영재학교 시스템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7차 교육과정을 따라야 하는 과학고에서는 기본이수과목 때문에 각 학생의 특성에 맞는 심화교육을 시키기가 힘들다는 것.
  이런 현장의 요구를 반영한 듯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누고 권역 당 1개씩의 영재학교를 설립 또는 전환한다는 방침이 지난해 말 발표됐다.
  이에 따라 서울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서울과학고가 영재학교로의 전환을 신청해 놓은 상태. 홍 교장이 구상하는 영재학교는 기본적으로 부산 영재학교의 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학년제를 폐지하고 필수·기본선택·심화선택 등 학점제를 운용할 방침이다.

교육제도 개편, 과학 인프라 구축 절실
  영재학교로의 전환이 확실시되고 있지만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별한 재능을 지닌 학생들의 다양한 욕구를 풀어 줄 제도적 보완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대학 학점 선이수제의 권한이 지금처럼 해당 대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교과정에서 자유롭게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제자들이 일반 대학교에 들어가면 1년 동안은 공부할 게 없다고 하소연한다. 이미 실력이 대학 1학년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이런 제도를 보완하지 않으면 국가적 손실이다.” 홍 교장은 그런 제자들에게 1년 동안 다른 분야의 전문서적을 탐독하라고 충고할 때마다 자괴감을 느낀다.
  그가 지적하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열악한 과학 인프라다.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과학을 자연스레 접할 수 있는 전시관이나 과학관 등 인프라 구축에라도 신경을 써야 하는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
  인구 100만 명 당 과학관 수가 미국 7개, 일본 3개, 대만이 2개인데 반해 한국은 0.5개라는 조사결과는 과학강국의 입지를 무색케 한다. 2003년부터 각급 학교 실험실 현대화 계획은 당초 목표한 5년이 지났지만 달성률 60%에 그치고 있다. 재정이 문제다.
  “일선에서 아무리 과학을 재미있게 가르치려 해도 변변한 실험도구나 기자재 하나 갖추기 힘들다. 직접 체험이 가장 확실하면서도 효과적인 교육임을 알고 있다면 이제 과감하게 투자할 때다.”
  홍 교장은 냄새나고, 낡고, 춥거나 더운 곳이 실험실이라는 인식이 아이들에게 과학을 점점 멀어지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라고 지적한다.
  올해가 교직생활의 마지막 해라는 홍 교장. 그는 “자기 자식을 키우는 것처럼 밤 12시까지 아이들과 씨름하며 성실하게 임하는 교사들이 있어 다행”이라며 교육에서 희망을 찾는다.

프리미엄 김지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