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야기>抗우울제 프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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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희로애락(喜怒哀樂)은 인간의 기본적인 정서다.그러나 喜와 樂만 있는 세상이 과연 인류에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정답은 약물로 인간의 정서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무드디자인(mood design)기법이 본격화될 21세기 후반이면 극명하게 제시될 전망이다.
「프로작」은 이처럼 캡슐하나로 기쁨을 선사할 수 있는 무드디자인기법의 대표적 항(抗)우울제.
작년 한해에만 전세계적으로 12억달러어치이상 판매됐으며 우울증에 시달리던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치료해 더욱 유명해지기도 했다.
프로작은 우울증뿐 아니라 그동안 난치병으로 알려져 왔던 월경前증후군이나 강박장애.도벽.주체할 수 없는 식욕항진증에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밝혀져 서방언론에 의해 해피메이커로까지 묘사되고 있다.
프로작의 약리작용은 대뇌속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작용을 증가시켜주는 것.
세로토닌이 정상보다 적게 분비되면 우울해지고 많이 분비되면 이유없이 즐거운 조증(躁症)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를 조절하는 것이 프로작의 치료원리다.한낱 물질에 불과한 프로작과 이의 사주를 받는 세로토닌에 의해 고귀한 인간의 영혼까지 좌우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서글픈 일.
그러나 분자생물학의 냉엄함은 이미 인간의 지능과 성격은 물론모성애마저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환자를 직접 다루는 현대정신의학에서도 정신분석및 상담위주의전통적인 프로이트와 융의 이론이 퇴색해버린 반면 숱한 약물들만이 치료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프로작은 보험수가로 캡슐당 1천원 가량이며 국내에서도 시판중이다. 그러나 알약 하나로 풍요의 시대에서 소외된 현대인의 지친 마음을 달래줄 수 있으리란 기대는 아직 성급하다는 평가다.
일단 프로작은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구입가능하다.
또 특별한 이유없이 우울한 우울증 환자 치료엔 뛰어난 효과를나타내지만 정상인의 일시적인 우울증엔 별무신통인 것도 프로작의한계다. 설령 사랑에 실패한 연인이나 상사의 꾸중으로 의기소침한 직장인의 정상적 우울증마저 치료할 수 있는 획기적 치료제가개발된다 하더라도 인류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으리란 전망이다.
불행의 씨앗은 그대로 지닌채 약물에 의한 활력과 위안을 억지로 얻는 것은 단지 껍데기 행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洪慧杰기자.醫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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