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여당이 패배를 극복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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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민의(民意)가 제도화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민의의 제도화는 비단 중앙정부 수준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방수준에서도 이뤄져야 하며 그래야만 민주주의의 제도화는 완결성을 갖추게 된다.이 점에서 이번 지방선거는 실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거가 치러진다고 반드시 민의의 제도화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선거가 민의의 제도화에 기여하려면 적어도 다음 두가지 전제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우선 선거절차와 방법이 민의를 제대로 여과할 수 있을 정도로공명정대해야 한다.다음에는 정부.여당이 선거결과에 담긴 민의를정확하게 간파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을 정도의 인지능력과 정책적 실천의지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6.27지방선거는 비록 지역주의의 병폐가 재연되기는 했지만 지역감정도 민의의 한 단면이라는 역설같은 주장을 인정한다면 민심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표출시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민의가 바르게 투영되었더라도 정부.여당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방식으로 대처하느냐에 따라 민의의 제도화 여부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만약 민자당이 선거결과에 담긴 민의를 잘못 읽고 무위무책으로 일관 한다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면 향후 국정운영에 있어 위기를 맞게 될 것이고10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과 그 다음해의 대선에서도 분명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번 선거로 야당이 지방 정부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됨으로써 집권여당은 이러한 상황변화에 어떤 방식으로든 대처하지 않을 수없게 되었으며 그것은 그들의 정치력을 시험하게 될 것이다.
여권이 상황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민의의 제도화를 유리한 국면으로 이끌어간다면 오늘의 위기는 새로운 기회로 반전(反轉)될 수도 있다.이런 점에서 여권이 뒤늦게나마 6.27지방선거의 패배와 민심이반을 자인하고 당직인사를 단행하는 등 대응책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은 의미가 있다.그런데 그것이 단순한 문책인사에그치거나 고식적인 미봉책으로 끝나버려선 의미가 감쇠된다.마땅히적극적이고 근본적인 조처가 취해져야 하는 것이다.
총론적으로 말하면 민자당은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과 이미지를 갖춘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그렇게 될 때라야 비로소 민자당은 오늘의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전환시킬 수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위상도 바로잡아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 한 방안으로 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다시금 마련하고 그것을 민자당의 실천이념으로 채택해야 한다.뿐만 아니라먼 미래에 대한 화려한 비전이나 구호보다는 지금 당장 국민이 느끼는 불편과 불만을 덜어주고 해소할 수 있는 정 책대안을 서둘러 개발해야 하며 인기보다는 실질적 성과에 역점이 두어져야 한다.개혁의 굴절이 선거패배의 주요 요인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강조하고 싶다.
개혁정책의 추진방식과 국정운영스타일 또한 바뀌어야 한다.지금까지의 방식이 목표지향적인 성취형이었다면 앞으로는 절차적 합리성을 존중하는 과정형(합의형)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와 아울러 민자당은 자신의 당명을 바꾸고 인적 구성도 과감하게 재편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기회주의적이고 퇴영적인 舊세력과의 어정쩡한 동거를 청산하고 문민시대의 집권정당답게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인사를 주축으로 자기정체성을 분명하 게 확립하기바란다.미운 사람 몇명 솎아내는,이른바 물갈이 방식이 아닌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오늘의 여권이 이 세가지만이라도 즉각 실천에 옮긴다면 다소 역설적이지만 지방선거에서의 패배는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내게 될 것이다.
〈고려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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