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3 명가의 추락=2005년 초 레인콤은 성공의 단물에 흠뻑 빠져 있었다. MP3플레이어 하나로 달성한 전년 매출이 4540억원. 애플 ‘아이팟’의 무서운 질주도 뵈지 않았다. 양 의장은 “아이팟을 적수 삼아 경쟁하다 보면 적어도 2등은 우리 것이라 믿었다”고 술회했다. 하지만 달콤한 기대는 곧 무너졌다. 애플이 아이팟 가격을 30% 가까이 낮춰버린 것이다. 판매상들은 “아이리버 가격도 낮춰라”며 아우성쳤다. 팔면 팔수록 적자가 쌓였다. 아이리버가 단기간에 세계 시장점유율을 11%(2004년)까지 높일 수 있었던 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대신 독자 브랜드를 내걸고 ^디자인과 서비스를 차별화하며 ^초기부터 규모의 게임을 펼쳐 단가인하와 글로벌화를 추진한 덕분이었다. 양 의장은 “이런 성공 요인들이 고스란히 실패 요인이 됐다”고 털어놨다. 레인콤은 아이팟에 맞서겠다는 욕심으로 2005년 미국·영국·일본 등지에 광고비를 쏟아부었다. 엇비슷한 디자인의 제품을 양산하고 서비스 비용도 아낌없이 지출했다. 그러나 ‘글로벌 거인’ 애플의 진군 앞엔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초심으로 돌아가 회사를 살펴보니 실패는 예정된 것이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유통업체에 휘둘리고 있었다. 유통업체가 “이런저런 제품을 만들어달라”고 하면 이에 맞춰 외부 전문가 집단이 만든 디자인 중 하나를 임원들이 거수로 결정하는 식이었다. 이렇다 보니 외부기관이 진행한 임직원의 창의성 지수 조사에서 업계 평균을 밑도는 점수가 나왔다. 2006년 초 일본의 소비자 모임에서 만난 한 고교생의 질책은 충격적이었다. 그 학생은 “왜 아이팟을 의식하느냐, 아이리버다운 제품으로 승부하라”고 호소했다. 양 의장은 “‘아이팟이 흰색이니 우린 와인색, 메뉴 키가 원형이니 우린 직선’ 하는 식으로 살짝 비튼 짝퉁을 만들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레인콤은 요즘 수익성이 갈수록 줄어드는 MP3P 외에 전자사전·PMP·휴대전화·홈네트워크 기기 등으로 제품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양 의장은 “무엇보다 아이리버 매니어들이 돌아온 게 기쁘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아이리버만의 일관된 컨셉트로 필요(Need)할 뿐만 아니라 갖고 싶은(Want) 제품을 만들어 내겠다”고 다짐했다.
이나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