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콤 대표 물러난 제조 기술벤처의 자존심 양덕준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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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버’라는 디지털 기기 브랜드로 이름난 ‘레인콤’의 양덕준(57) 창업자가 지난 26일 공동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이사회 의장으로 경영에 계속 참여한다고는 하지만 속사정이 궁금하다. 28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지금 필요한 최고경영자(CEO)는 제너럴리스트(다방면의 지식을 갖춘 사람)이지 나 같은 스페셜리스트(특정 분야 전문가)가 아니에요. 나는 신사업과 제품 컨셉트를 잡는 일에 주력하고 싶어요.” 2년여의 극심한 영업부진을 딛고 비로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그의 얼굴은 초췌했지만 자신감이 엿보였다.

◇MP3 명가의 추락=2005년 초 레인콤은 성공의 단물에 흠뻑 빠져 있었다. MP3플레이어 하나로 달성한 전년 매출이 4540억원. 애플 ‘아이팟’의 무서운 질주도 뵈지 않았다. 양 의장은 “아이팟을 적수 삼아 경쟁하다 보면 적어도 2등은 우리 것이라 믿었다”고 술회했다. 하지만 달콤한 기대는 곧 무너졌다. 애플이 아이팟 가격을 30% 가까이 낮춰버린 것이다. 판매상들은 “아이리버 가격도 낮춰라”며 아우성쳤다. 팔면 팔수록 적자가 쌓였다. 아이리버가 단기간에 세계 시장점유율을 11%(2004년)까지 높일 수 있었던 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대신 독자 브랜드를 내걸고 ^디자인과 서비스를 차별화하며 ^초기부터 규모의 게임을 펼쳐 단가인하와 글로벌화를 추진한 덕분이었다. 양 의장은 “이런 성공 요인들이 고스란히 실패 요인이 됐다”고 털어놨다. 레인콤은 아이팟에 맞서겠다는 욕심으로 2005년 미국·영국·일본 등지에 광고비를 쏟아부었다. 엇비슷한 디자인의 제품을 양산하고 서비스 비용도 아낌없이 지출했다. 그러나 ‘글로벌 거인’ 애플의 진군 앞엔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초심으로 돌아가 회사를 살펴보니 실패는 예정된 것이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유통업체에 휘둘리고 있었다. 유통업체가 “이런저런 제품을 만들어달라”고 하면 이에 맞춰 외부 전문가 집단이 만든 디자인 중 하나를 임원들이 거수로 결정하는 식이었다. 이렇다 보니 외부기관이 진행한 임직원의 창의성 지수 조사에서 업계 평균을 밑도는 점수가 나왔다. 2006년 초 일본의 소비자 모임에서 만난 한 고교생의 질책은 충격적이었다. 그 학생은 “왜 아이팟을 의식하느냐, 아이리버다운 제품으로 승부하라”고 호소했다. 양 의장은 “‘아이팟이 흰색이니 우린 와인색, 메뉴 키가 원형이니 우린 직선’ 하는 식으로 살짝 비튼 짝퉁을 만들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벤처 DNA로 재기하다=긴축 경영에 들어갔다. 해외 유통망을 줄였다. 2006년 8월엔 경영에 책임지고 창업 동료 4명이 한꺼번에 옷을 벗었다. 36세의 경영 컨설턴트 김혁균씨를 CEO로 영입해 조직정비에 들어갔다. 양 의장은 “경영진부터 바꾼 건 틀에 박힌 양산 제조업체가 돼버린 회사 체질을 기술·디자인 중심의 벤처 초심으로 되돌리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2006년 레인콤은 전년 기획제품 3종 외에는 아예 신제품을 내지 않았다. 대신 ‘아이리버다운’ 컨셉트와 새 디자인 개발에 몰두하면서 와신상담했다. 지난해 1월 미 라스베이거스 가전쇼(CES)에 출품한 초소형 전자사전과 멀티미디어 폰, 신개념 MP3P ‘클릭스’는 해외 언론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부스를 마련할 돈이 없어 호텔 방에서 진행한 프레젠테이션이었기에 더욱 값진 성과였다. 2006년 4분기에는 드디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지난해 8월엔 삼성전자 출신 전문경영인 이명우 대표이사를 영입했다. 그 즈음 출시한 미키마우스 모양의 MP3P ‘엠플레이어’는 이미 40만 개가 팔렸다. 이 제품은 레드닷 디자인상, iF 디자인상, 일본 굿디자인상 등 세계적인 상을 석권해 ‘디자인 명가’ 레인콤의 자존심을 되살렸다.

레인콤은 요즘 수익성이 갈수록 줄어드는 MP3P 외에 전자사전·PMP·휴대전화·홈네트워크 기기 등으로 제품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양 의장은 “무엇보다 아이리버 매니어들이 돌아온 게 기쁘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아이리버만의 일관된 컨셉트로 필요(Need)할 뿐만 아니라 갖고 싶은(Want) 제품을 만들어 내겠다”고 다짐했다.

이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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