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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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2부 불타는 땅 떠난 자와 남은 자 (26) 물새들이 희뿌옇게 개어오는 새벽하늘을 날며 지나갔다.겨우 정신을 가다듬은 가쓰요가 몸을 일으키며 모래와 자갈 사이로 넘어져 있는 사내를바라보았다.땅에 얼굴을 박은 그런 자세로 사내는 한 팔을 몸에깔 고 있었다.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고 난 가쓰요가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갑자기 바닷물이 크게 철썩이고 새벽빛이 한결 개어오는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서서 사내의 옷을 확인하는 순간 가쓰요는 또 한번 놀랐다.그녀는 자신의 어금니가 덜덜 소리를 내면서 부딪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면서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았다.
후미진 바닷가에는 아무 것도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멀리 바라보이는 포구는 여전히 어두컴컴했고 그쪽에도 불빛은 없었다.바다도 새벽빛 속에 희끄무레하게 밝아오고 있는 바다도 잔물결 뿐,드넓디 드넓을 뿐이었다.
다만 멀리 군함 모습을 한 탄광이 있다는 섬만이,어슴푸레한 새벽 하늘을 뒤로 하고 떠가듯 바라보였다.
큰일났구나.난 이 옷을 알아,이 남자가 입고 있는 옷을 알아. 가쓰요의 안에서 비명처럼 그런 소리가 새어나왔다.몇번인가 이 옷을 입은 사람을 그녀는 본 적이 있었다.죄수들이 거기서 일을 한다고 했던 섬,저 군함 모습을 한 섬에서 탈출을 하다가죽은 시체들이었다.물살을 따라 이쪽 육지로 흘러온 그 시체들은언제나 이 옷을 입고 있었다.탄광의 광부들이 입는 옷이라고 했었다. 죽었나.
가쓰요는 얼굴을 땅에 처박은 사내의 뒤통수를 내려다보았다.죽었을 리가 없지.할머니라고 나를 부르지 않았던가.도와달라는 소리도 내 귀로 들었으니까.엎어져 있는 사내의 몸을 조심스레 흔들었다.사내가 몸을 꿈틀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가쓰요가 조금 물러나며 물었다.
『이봐요,누구시오?』 사내가 희미하게 뜬 눈으로 초점없이 가쓰요를 올려다 보았다.
『도와,도와 주세요.물,물….』 입술이 타들어간 얼굴과 몸을움직여 바위에 기대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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