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새 경협·북핵·미사일·NLL 모두 건드린 북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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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개성공단 내 남북경협협의사무소 남측 직원들을 압박해 철수시킨 지 하루 만인 28일 남북 관계, 북·미 관계의 최대 현안인 북핵-미사일-서해 북방한계선(NLL) 카드를 모두 꺼내 들었다.

남북경협협의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철수시킨 건 남북 경협의 최대 상징물인 개성공단과 연계돼 있다. “핵시설 무력화에 심각한 영향이 올 수 있다”고 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북핵 문제다. 게다가 주변 국가들의 여론에 민감한 영향을 미치는 미사일까지 발사했다. 이미 두 차례 남북 해군이 교전을 벌였던 NLL을 놓고는 “남조선군 호전광들의 무모한 도발 책동으로 서해 전연해상(전해상)에서 언제 무장충돌이 일어날지 모를 위험한 정세가 조성되고 있다”고 수위를 높였다.

이틀 사이 북한이 보여준 동시다발적 시위는 새 정부의 대북 정책과 한·미 양국의 6자회담 진전 요구에 맞대응해 치밀하게 계산한 위기 조성용 카드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반도와 북핵 문제에서 긴장감을 높여 새 정부를 흔들고, 한·미 양국에서 최대한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이날 서해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북한군은 동계훈련 중이었다. 북한군은 통상적으로 미사일의 성능·운용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훈련 기간 중에 발사한다. 군 당국도 이미 미사일 발사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사일 발사와 같은 민감한 군사 행동엔 정치적 의도가 개입됐다는 게 다수 전문가의 분석이다.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은 “미사일 발사엔 자체 프로그램에 따른 성능 향상 목적 외에도 새 정부에 대한 불만과 4월께 연례적으로 테러지원국 해제 여부를 판단해 온 미국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포함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도 “북한은 과거 한·미의 압박이나 무대응 전략을 지켜보다 긴장 조성에 나서 최대한의 파이를 얻으려는 시도를 하곤 했다”며 “대외 문제에서 일괄 타결을 시도하기 직전에 이런 카드를 써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전방위 압박을 하면서도 치밀한 수위 조절을 하고 있음도 감지된다. 발사된 미사일은 남포 앞바다에서 남쪽이 아닌 북동쪽 해역으로 향했다. 외무성의 북핵 관련 입장 발표도 ‘외무성 성명’ 또는 ‘외무성 대변인 성명’보다 무게가 한 단계 낮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로 했다. 철저하게 앞뒤를 따진 뒤 카드를 꺼내놓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말 아낀 청와대=청와대와 정부는 신중했다. 북한의 진의를 꼼꼼히 살피되 불필요하게 상황을 확대 해석하거나 북한을 자극해 북한이 의도하는 상황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기조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미사일 발사는 통상적인 훈련으로 보인다”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확대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던 중 관련 보고를 받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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