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고비라는 이름의 고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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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고비라는 이름의 고비’ - 김민정(1976~ )

고비에 다녀와 시인 C는 시집 한 권을 썼다 했다 고비에 다녀와 시인 K는 산문집 한 권을 썼다 했다 고비에 안 다녀와 뭣하나 못 읽는 엄마는 곱이곱이 고비나물이나 더 볶게 더 뜯자나 하시고 고비에 안 다녀와 뭣하나 못쓰는 나는 곱이곱이 자린고비나 떠올리다 시방 굴비나 사러 가는 길이다 (중략) 낙타를 타라는 건 상투의 극치, 모래바람은 안 불어주는 게 덜 식상하고 끝도 없는 사막은 안일의 끝장이니 해서 나는 이른 새벽부터 고래고래 노래나 따라 부르는 까닭이다 한 구절 한 고비, 엄마가 밤낮없이 송대관을 고집하는 이유인 즉슨이다


너나없이 떠나는 고비에 시인들도 난데없이 다녀와 책을 펴낸다. 다들 외국에 나가 시를 써오는데 곱이곱이 고비나물 타령이라니 참 철없는 시인일세. 가만, 흰 머리칼 길게 자란 엄마의 반 가르마 두 갈래 길에서 사막의 길을 보고 있네. 한 구절 한고비, 유쾌한 수다를 떨며 엄마의 송대관 노래로 사막의 시를 쓰고 있구나. 저런 고집이라면 닮아야겠다.

<박형준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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