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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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연초부터 물가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국제유가는 지난해 초에 비해 거의 두 배로 올랐고, 같은 기간 동안 곡물 가격도 두 배 이상 올랐다. 이를 반영해 2월에는 수입원자재 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약 50%나 오르면서 수입물가가 전체적으로 22% 올랐다. 지난해 10월 이전까지 한 자릿수에 머물렀던 수입물가 상승률이 이제는 20%대로 올라섰으니 국내 물가 불안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의 생계비용을 나타내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연 2%대 상승에 그쳤으나 이제는 3%대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 원자재 가격이 조기에 안정되지 않는다면 4%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물가만 오르는 것이 아니라 미국 경제가 침체 국면으로 점차 빠져들면서 세계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있다. 국제 전망기관들은 속속 성장 전망을 낮추고 있고, 우리나라 경제 전망기관들도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을 지난해의 5%에서 4%대로 낮추고 있다.

물가가 오르고 성장이 둔화되는 상황에서 정책당국은 올해 경제 운용의 중점을 어디에 둘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올해 물가상승률을 3%대 초반으로 안정시키면서 6% 안팎의 성장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그런데 민간 경제연구기관들은 물가상승률을 연 3%대 초반으로 안정시키려면 경제성장률을 4%대로 낮춰야 하며, 5% 이상의 성장이 어렵다고 한다.

지난 몇 년간 오르지 않았던 라면 값과 자장면 값이 오르면서 서민들은 불안해한다. 점심에 즐겨 먹는 된장찌개 값은 오르지 않았으나 곁들여 나오는 반찬이 예전 같지 않아 직장인들도 즐겁지 않다. 무엇보다도 한번 오른 물가가 더 오르지나 않을까 불안하다. 정부도 물가 불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가격을 집중 관리할 52개 생활필수품을 선정했다.

물론 가격 통제나 관리는 물가 불안을 진정시키는 임시적 방편이다. 물가가 오르는 것은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등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므로 오를 물가는 언젠가 오른다. 물가 집중 관리 대책이 효과가 있다면 비용 상승 요인을 일시에 가격에 반영하지 않고 점차적으로 반영하게 함으로써 물가의 점진적 상승을 유도하는 데 있다.

올해 정부 경제운용 목표의 달성 여부는 무엇보다도 미국 경제 침체와 원자재 가격 상승의 충격이 얼마나 클 것인지에 달려 있다. 현재의 미국 경제 불안이 조기에 수습되고, 원자재 가격도 조기에 안정되지 않는 한 우리 힘으로 경제운용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여건이 어려워질 때 무리하게 목표를 추구하게 되면 물가와 성장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잃게 된다.

미국 경제 침체로 국내 경기 둔화가 우려되므로 금리를 내리고 환율을 올려서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올해 우리 경제가 4%대 성장을 하기도 힘들 만큼 어렵다고 판단될 때 설득력을 갖는다. 미국은 당초 물가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 금리를 올렸으나 예상하지 못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최근에는 금리를 내리기에 바쁘다. 우리 경제 사정이 이렇게 급박하지 않은데도 무리하게 경기확대 정책을 펼치면 물가상승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

물가와 성장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방법은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정부가 중점을 두는 규제완화, 감세, 작은 정부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문제는 단기간에 생산성을 높이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고, 생산성과 무관하게 임금을 받는 관행을 시정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지금같이 경제 여건이 어려울 때에는 성장목표에 집착하기보다 고통스럽더라도 ‘선진화 원년’의 정책목표들을 착실히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7% 성장을 하려면 부지런히 먹기보다 체력부터 튼튼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박원암 홍익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