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時)가 있는 아침 ] - '네모난 삼각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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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중(1971~) '네모난 삼각형' 부분

어머니 뱃속에서 나는 비행기를 접어 날리며 놀았다
아픈 그 여자 숨어서 울 때마다 비가 왔다
그럼 나도 종이로 우산을 접고 따라서 우는 척했다
그 여자 뱃속은 늘 김이 서린 목욕탕의 거울
어느날은 거기 네모난 삼각형을 하나 그렸다 (중략)
기억에 태어나던 날 도립병원에는 큰불이 났고
불 그림자 일렁거리며 난
이 이상한 세상을 향해 힘껏 팔을 뻗었던 것이다 (중략)
그 여자 젖은 나를 꼭 껴안으며
네모난 삼각형을 그려보이며 기절했다. 오오!
어머니가 삼십년을 습작하여 발표한 최초의 시집(詩集)
그게 바로 나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추억이다



지상에서 머무는 동안 당신이 지닌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하나 들라고 하면 당신은 어떤 이야길 꺼내겠는가. 이 젊은 시인은 자신이 지상 위에 태어나던 최초의 시간을 기억한다. 어머니가 삼십년을 습작하여 발표한 운명의 시집. 고통과 연민, 사랑과 쓸쓸함이 함께 빚어낸 이 생명의 탄생이야말로 지극히 신비한 네모난 삼각형의 세상인 것이다. 환상보다 따뜻하게, 그 어떤 절망보다 웅혼하게 펼쳐지는 생의 기하학 또한 당신의 것!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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