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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출신 CEO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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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에 따라 기업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할 정도로 기업에서 CEO의 비중은 크다. 피터 드러커는 가부장적 규범에 의존하는 전통적 산업주의 시대에는 카리스마적 리더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지식이 권위의 새로운 원천이 된 신산업주의 시대에는 카리스마적 리더보다는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줄 아는 리더가 성공한다고 진단한다. 식을 줄 모르는 에너지, 다수를 압도하는 당당한 태도, 뛰어난 사고력, 매력적인 인품, 비범함, 전문기술 등이 카리스마적 리더의 원형이다. 카리스마적 리더는 규칙.규정을 준수하기보다는 이를 무시하고 스스로 규칙.규정을 만들어 나간다. 카리스마적 리더는 자신의 완전무결을 과신하고 변화에 대해 완고한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오히려 실패를 불러올 확률이 높다고 피터 드러커는 지적한다.

요즘은 CEO도 상품이다. 일반 직원처럼 CEO도 사고 팔리는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잡지 포춘이 최근 선정한 '세계에서 존경받는 10대 기업'의 CEO는 모두 20년 이상 그 회사에서 근무한 내부 출신이었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기업들이 외부에서 CEO를 찾는 경향이 있다고 말할 만하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외부에서 CEO를 영입하는 경우엔 대부분 카리스마적 리더를 찾게 된다고 지적했다. 위기에 처한 조직을 이끌어 나가려면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컨설팅 회사인 부즈앨런의 척 루시어(Chuck Lucier)가 외부에서 영입된 CEO들의 성과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임기 초반에는 일을 잘 하지만 후반기에는 조직을 망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외부 출신 CEO들이 강력한 구조조정 등을 통해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데는 능하지만, 장기적 성장을 위한 조직을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물론 IBM의 루 거스너처럼 조직 자체를 새롭게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평을 듣는 외부 출신 CEO도 없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외부 출신 CEO가 늘고 있다. 김정태 국민은행장에 이어 최근 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이 우리금융지주회사의 회장으로 내정됐다. 척 루시어의 분석에 따르면 이들의 성공 여부는 임기 후반부의 성과로 평가되어야 한다.

이세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