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서 홈런치면 춤? 김성근 OK , 김인식 NO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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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전장에 나가는 장수처럼 시즌 개막을 앞둔 프로야구 사령탑들의 표정은 비장했다.

가끔 흘리는 웃음 속에서도 상대를 제압하려는 매서운 눈매가 꿈틀거렸고, 던지는 말 속엔 뼈보다 단단한 철심이 박혀 있었다.

25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2008 삼성파브 프로야구 미디어 데이’ 행사장. 8개 프로야구단 감독들은 초반부터 신경전에 돌입했다. 신상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인사말을 하기 무섭게 지난 시즌 우승팀 SK 와이번스의 김성근 감독에게 달려들었다.

하기야 신 총재의 인사말 자체가 싸움을 부추겼다. 그는 “오늘은 말로 전부 삼진을 잡고, 홈런을 날려라. 상대를 콜드게임으로 이기는 입심을 보여 달라”고 주문했다.

김인식(61) 한화 감독이 후배들을 대신해 맨 먼저 김성근(65) SK 감독에게 딴지를 걸었다. 김인식 감독은 “올 시즌 4강엔 SK가 제일 유력하지 않겠어. 감독 나이가 가장 많잖아”라고 도발했다. 프로야구 최고령 감독임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였다.

기싸움이라면 김성근 감독도 지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다. 김성근 감독은 “‘국민 감독’이 지도하는 한화가 4강에 제일 유리하지 않겠어”라고 맞받았다. 4강에 들지 못하면 국민감독 칭호가 부끄럽지 않겠냐는 은유적 공격이다.

두 감독은 “홈경기에서 홈런이 나오면 홈 팬들을 위해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하겠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상반되게 반응했다.

김성근 감독이 “팬과 선수 간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반색한 반면 김인식 감독은 “그렇게 나오면 홈런 맞은 투수는 화가 난다. 빈볼 아닌 빈볼을 던질 수 있다”며 거부감을 나타냈다.

한편 선동열 삼성 감독은 “올해는 SK에 꼭 이기고 싶다”고 말했고 김경문 두산 감독은 “올해는 SK와 삼성, 롯데, KIA가 4강 후보다. 그중에서도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우리를 이긴 SK에는 지고 싶지 않다”고 전의를 다졌다.

이광환 우리 감독은 “늦게 창단한 막내둥이 팀인 만큼 올해 내내 말썽 피우더라도 예쁘게 봐달라. 마운드 축인 김수경과 전준호가 재활 중이라 문제다. 빈 자리를 30% 이상 메울 젊은 선수들이 얼마나 해줄지 궁금하다”고 불안해 했다.

제리 로이스터 롯데 감독은 “우리 팀은 올해엔 경쟁에서 상당히 뛰어난 모습을 보일 것이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국에서 좋은 야구를 많이 봤다. 부임 첫해인 올해 4강에 진출하고 싶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수성의 입장에 선 김성근 SK 감독은 “1군 선수들 부상이 많아 시범경기에서 헤맸다. 하지만 4월 한 달 동안 5할 승률만 올릴 수 있다면 승산이 있다”고 예상했다.

간판급 선수들도 말싸움에 가세했다.

롯데 정수근은 “지난 몇 년간 부산 팬들에게 ‘가을 잔치’를 한다고 사기쳤는데 올해는 그러지 않겠다. 올 시즌 로이스터 감독 부임 이후 선수들이 알아서 한두 시간씩 스스로 연습을 더 한다. 이게 달라진 점”이라고 자랑했다.

이에 마이크를 건네받은 KIA 주장 장성호는 “훈련을 적게 시키니까 개인연습을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 뒤 “우리 팀은 딱딱했던 분위기가 편안하게 바뀌었다. 조범현 감독이 섬세하고 빠른 야구를 원한다. 부상만 없으면 올 시즌은 자신있다”고 맞받았다.

허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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