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여행>遊說-돌아다니며 자신의주장을 펼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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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유(遊)는 남자(子)가 펄럭이는 깃발()처럼 정처없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것()을 뜻한다.그래서 遊는「노닐다」는 뜻을가지고 있다.유람(遊覽).야유회(野遊會)가 있다.
설(說)은 말(言)로써 상대방을 이해시켜 흡족하게(兌.기쁠 태) 해준다는 뜻이다.그런데 遊說의 說는「설」이 아닌「세」로 읽어야 한다.
곧 유세란 변설가(辯舌家)가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세득(說得.보통은 설득으로 읽음)시키는 것을 뜻한다.그렇다면 說服도 「세복」이라고 읽어야 하지 않을까.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는 혼란기였지만 많은 사상가들이 나타나자신의 통치철학을 주장했다(百家爭鳴).그들은 열국(列國)의 제후(諸侯)들에게 자신의 철학이야말로 최선의 이데올로기임을 역설했는데 그것이 유세며 그들을 세객(說客)이라고 했다.최초로 유세를 한 사람은 공자(孔子)였다.수레를 타고 무려 14년동안 6개국을 돌아다녔지만 소득이 없었으며 한비자(韓非子) 또한 유세의 요령을 적은 세난편(說難篇)까지 썼지만 기실 자신은 진시황(秦始皇)을 유세하는데 실패하여 사약(死藥)을 받고 죽어야 했다.유세는 그만큼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유세는 많이 변질된 것 같다.유세의 대상이 제후 한사람에서 다수의 유권자로 바뀌었다는 점과,오직 논리정연한이론과 정책만을 무기로 삼았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금품(金品)과향응(饗應)이 난무하게 되었으니 말이다.그러나 전국 말기 장의(張儀)는 세치 혀(三寸舌)만으로 연횡책(連橫策)을 이끌어냄으로써 일약 진(秦)의 재상에 오를 수 있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鄭 錫 元 〈한양大 중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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