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향기] 깨죽을 끓이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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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인 큰아이가 감기에 걸리더니 입맛을 잃고 영 먹는 것이 시원치 않다. 아침과 낮의 기온차가 심해서인지 쉽게 낫지 않고 골골거린다. 목이 부어 음식을 제대로 넘기지도 못하며 힘들어 한다. 심란한 마음에 무엇을 먹이면 좋을까 궁리하다가 깨죽이 생각났다. 먹기도 좋고 영양도 만점일 것 같아 방앗간에서 검은깨와 쌀을 빻아 아이 올 시간에 맞추어 깨죽을 쑤었다. 이내 끓기 시작하는 죽냄비를 젓다가 거품처럼 솟아오르는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오래 전의 초여름. 아버지도 안 계신 집안에서 눈만 뜨면 농사일, 집안일로 늘 바쁘시던 어머니. 편도선이 부어 올라 침을 삼키지 못하면서도 새벽같이 깨 모종하러 가시는 어머니를 따라 나서 두세포기씩 모종을 챙겨 드리기도 했다. 그날도 밭일을 하시는 어머니를 찾아 들에 나갔다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종알대며 저녁 무렵에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샘가에서 호미와 손을 씻으신 어머니는 머리가 아프시다며 저녁을 언니에게 맡기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언니가 챙겨 준 두통약과 물그릇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니 방문 앞에 어머니가 쓰러져 계셨다. 놀라 지르는 비명에 언니들이 달려오고 의사 선생님을 모셔 왔으나 어머니는 끝내 그 밤을 넘기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다.

믿어지지 않았다. 무엇이 그리도 급하셨던 것일까. 그 푸른 마흔아홉에 고만고만한 아이 여덟을 남겨두고 어찌 눈을 감으셨을까.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 울다 기진해 버린 어린 상주들이 안쓰러웠던지 옆집 아주머니께서 깨죽을 쑤어 왔다. 산 사람은 먹어야 한다며 억지로 쥐여 주던 수저 끝에 담긴 까만 깨죽. 사흘 만에 입에 넣은 음식에 죽 그릇은 순식간에 비워졌다. 그러나 수저를 놓는 순간, 어둠처럼 따라붙던 죄책감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세상의 전부라 믿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나는 사흘도 참지 못하고 음식을 입에 대다니 너무도 부끄러워 참으로 오랫동안 괴로웠다.

죽은 이미 다 끓었는데도 삼십년 너머로 돌아간 내 기억은 좀체 제자리로 돌아 올 줄 모르고 헤멘다. 나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힘들다며 절절 매는데 어머니는 어려운 살림에 여덟을 키우시면서도 짜증을 내셨던 기억이 없다. 달걀 여덟개를 한꺼번에 모으기가 시간이 걸렸던 탓일까? 아니면 엄마의 전략(?)이었을까. 자식 여덟이 제각각 뒤꼍으로 살짝 불려 가 삶은 달걀을 몰래 얻어먹은 기억을 갖고 있어 자기가 엄마한테 최고로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한번도 의심하지 않게 하셨던 어머니. 그런데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동생만 예뻐한다고 항의를 받는 나는 우리 아이에게 어떤 엄마로 기억될까?

자정이 지나 아이는 오늘도 파김치가 되어 돌아왔다. 허리가 휘청할 만큼 무거운 아이의 책가방을 받아주고는 서둘러 식탁을 차린다. 며칠을 제대로 먹지 못해 시장했던지 맛있다며 한 그릇을 다 비우는 아이를 '힘들지?'하며 등 뒤에서 가만히 안아 본다. 덜컥 커버린 덩치로 쑥스러워하면서도 녀석은 좋은지 씩 웃는다. 저 녀석이 깨죽에 얽힌 사연을 짐작이나 할까.

한은주(대전광역시 서구 변동.4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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