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앞두고 盧대통령 - 정동영 의장 통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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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후 9시30분. 야당이 제출한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에 보고된 지 3시간가량 지났을 때다. 의원들과 함께 농성 중이던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휴게실로 잠시 혼자 나왔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당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미안함이 앞섰다.

11일로 잡힌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관련한 자신의 의견을 전했다. "사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과하면 하는 대로 (야당은) 분명히 사과의 수위를 갖고 문제 삼을 것입니다. 야당은 분명히 탄핵하려 할 것이고, 그럴 생각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사과 요구는 걸지도 않았을 겁니다"는 게 요지였다.

盧대통령도 그런 鄭의장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鄭의장은 "차라리 검찰 수사에 대한 입장만 밝히시고, 일문일답도 하지 않는 게 어떻습니까"는 의견까지 냈다. 10분간에 걸친 통화는 이렇게 끝났다.

회견을 하루 앞둔 10일 청와대의 대통령 사과를 둘러싼 입장은 분명했다. 대부분의 참모는 "도대체 뭘 사과할 거냐"는 쪽이었다.

특히 청와대와 여권은 3월 9일자 파이낸셜 타임스의 사설 '서울에서 들려온 허튼소리'를 이런 결론의 근거로 잡았다.

"지금 서울에서 야당은 대통령이 선거법을 위반한 데 대해 사과하지 않는다고 탄핵으로 위협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한국이 외자를 유치하고 동북아의 중심이 되는 데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이제 한국 정치인은 선진국 이미지에 걸맞은 정치문화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궁리해야 한다."

청와대 참모들은 盧대통령에게 과거 대통령들의 사례도 제시했다. YS와 DJ의 선거 개입 발언이다.

"16대 총선 결과가 남은 3년간 일하는 데 괜찮다 싶을 정도만 되면 좋겠다."(DJ.경향신문)

"이번 선거에서 안정의석을 얻어 정치개혁과 민주주의를 하는 게 우리 임무다."(DJ.동아일보)

"지방자치를 한 대통령으로 남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 당(신한국당)이 승리해야 한다."(YS.조선일보)

결국 盧대통령은 회견의 초점을 검찰의 불법 자금 수사 중간 결과 발표에 대한 입장정리에 맞췄다 한다. 핵심은 두 가지다. 총선 후 계속 수사와 이를 통한 정치.정당 개혁이다. 10분의1 발언 책임에 대해서도 정공법을 택했다. 최종 수사 결과를 놓고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 핵심 인사는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는 겨우 5부 능선을 넘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수호.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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