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의 ‘협상 명심보감’ ④ 먼저 이익 밝은 소인 되고 나중에 의 찾는 군자 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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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협상에서 이익을 철저하게 따지는 건 중국인에게 정해진 이치, 이른바 정리(定理)다. 오죽하면 ‘먼저 이익에 밝은 소인이 되고, 그 후에 의를 찾는 군자가 되라(先小人後君子)’는 성어가 나올까.

장승철(전 현대증권 IB본부장) 부산은행 부행장은 중국 비즈니스맨들의 협상술을 이 성어 한마디로 요약한다. 그는 “한국 비즈니스맨들은 반대로 좋은 게 좋은 식으로 대충 협상을 끝내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얼굴을 붉히는 선군자후소인(先君子後小人)의 성향을 보인다”며 “이는 우리가 중국인과의 협상에서 밀리는 한 요인”이라고 말한다.

“3년 전 부실자산(NPL) 인수 관련 협상 때였습니다. 상대 파트너는 우리 측과 ‘관시(關係)’가 두터운 사람이었지요. 그러나 협상장에 들어선 순간 그는 돌변했습니다. 치밀한 자료를 제시하며 우리의 허점을 맹렬히 공격했습니다. 라오펑유(老朋友: 오랜 친구)가 적으로 변한 것이지요. 우호적인 협상을 기대했던 저희들이 그만 당하고 말았지요.” 1994년 홍콩법인장으로 활동한 이후 지난해까지 현대증권의 중국사업을 주도했던 장 부행장은 “그 이후 중국인들과 협상에 나설 때면 나 역시 철면피가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중국인들이 말하는 관시의 뜻을 명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관시란 이익이 보장될 때라야만 성립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관시란 내가 만든 이익의 울타리에 너도 끼워준다는 뜻”이라며 “단지 몇 번 만나 술 마시고, 선물을 줬다고 해서 관시가 형성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라고 강조했다. 관시는 중국 비즈니스의 윤활유일 뿐 의존해야 할 대상은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장 부행장은 관시에 의존한 비즈니스 대안으로 ‘조직 플레이’를 제시한다. 개인에 의존한 비즈니스에서 탈피, 회사의 각 조직이 유기적으로 달려들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중국 금융업 종사자들과 협상을 해보면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조직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중국 업무에 정통한 스타플레이어 한 명에 의존하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 없다”고 말했다.

한우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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