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출 현장일기] "웃기되 저질은 안돼" 코미디 PD는 고달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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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곤 MBC '코미디 하우스' 조연출

"프로그램 이름을 바꿔야 해!" 지난해 10월 '코미디 하우스'가 하도 인기가 없자 누군가 고민 끝에 꺼낸 얘기다. "일단 코미디란 말을 빼야 해. 코미디라는 말을 듣는 순간 바로 관심을 끊는다니까!"

맞는 말 같았다. 분(分)당 시청률 8%로 시작해 프로그램 끝날 때까지 큰 변동없이 8%로 마감하는 상황. 한마디로 무관심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시청률이었다. 코미디의 어려움을 절감했다.

코미디는 대체로 원초적인 웃음을 추구한다. 한데 이게 조금만 빗나가면 '저질'로 몰린다. 우리 제작진에게는 '저질'이라는 말에 노이로제가 있을 정도다.

'웃.지.마-조혜련의 골룸편'을 녹화했을 때의 일. 골룸이 어찌나 우습던지 웬만해선 입을 열지 않는 카메라맨도 터져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수 없어 어쩔 줄 몰라 했다. 다음 코너를 준비 중이던 연기자들도 배꼽을 잡고 뒹굴어 연습이 중단됐다.

'대박'을 예감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편집을 했다. 그런데 점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이거 저녁 식사시간에 방송될 텐데 너무 흉칙하지 않나. 징그럽다고 하지 않을까.' 연출자인 조희진 PD도 편집본을 보고 한참 신나게 웃고 난 뒤 "그런데 이거 좀 저질스럽지 않나? 이러다 나 저질 PD로 찍히면 어떡해"라며 걱정했다.

방송이 나가자 호평이 많았지만 그 순간까지 우리는 불안에 떨어야 했다. 이런저런 곡절을 딛고 '코미디 하우스'가 드디어 인기 프로그램의 반열에 올라 뿌듯하다. 시청률도 20% 가까이 뛰어올랐고 별다른 저질 시비도 없다. 특히 '코미디'란 간판을 그대로 단 채 이뤄낸 쾌거라 더욱 값져 보인다. 올해는 코미디가 다시금 중흥하길 빌며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코미디가 질이 낮다는 편견을 버려!"

김유곤 MBC '코미디 하우스' 조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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