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칼럼>관철동시대 38.이창호의 세계재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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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일본의 새로운 1인자 고바야시 사토루(小林覺)9단은 『현재 세계에서 누가 가장 강한가』라는 질문을 받고 조훈현.조치훈.이창호 세사람을 꼽았다.이 3명은 모두 한국인이다.
공교롭게도 4년전 그러니까 91년 제3기 동양증권배 세계바둑대회 준결승에서 이 3명이 만났다.나머지 한사람은 중국인 린하이펑(林海峯)9단.
16세의 이창호는 불가사의한 힘으로 한국바둑계를 휩쓸고 있었고 39세의 조훈현은 막강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점차 코너로 몰리고 있었다.
36세의 조치훈은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光一)9단에게 일본의 권좌를 빼앗긴채 와신상담하고 있었고 50세의 林9단은 여전히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여름의 준결승전.조훈현-이창호,린하이펑-조치훈이 대결했다.曺9단은 아무래도 힘겨울것 같았는데 그 예측은 적중했다.그러나 林9단은 예상을 뒤엎고 조치훈을 2-0으로 일축해 버렸다.
중천(中天)에 있던 曺.趙가 몰락하고 떠오르는 이창호와 지는린하이펑이 결승에서 격돌한 것이다.
두 사람은 여러모로 닮은 존재였다.林은 23세때 당시 무적이던 사카다 에이오(坂田榮男)9단을 꺾고 사상최연소로 「명인」이됐다.계산에 밝고 끝내기가 강했다.부드러우면서도 끈덕지게 지구전을 벌여 강렬하고 날카로운 사카다를 침몰시켰다 .
이창호는 좀더 두텁지만 기풍도 성격도 林과 비슷했다.강렬함에서 사카다에 필적하면서도 좀더 빠른 조훈현의 상극으로 등장한 점도 비슷했다.사람들은 말했다.
『林이 「이중허리」라면 이창호는 삼중허리다.비슷한 기풍이라면젊은 이창호가 이긴다.』 『아니다.이창호는 국제전에 약한데다 林과 같이 끈덕진 바둑을 상대해본 일이 없다.』 린하이펑은 바둑계의 불사조라 할만한 사람이었다.일본바둑사를 볼때 林은 컴퓨터 이시다 노부오(石田芳夫)9단에게 무너졌고 이시다는 킬러 가토 마사오(加藤正夫)9단에게 무너졌으며 가토는 조치훈에게 무너졌다.그런데 돌고 돌아 林은 다시 조치훈을 꺾었다.기풍은 이중허리지만 그의 인생역정은 오중허리쯤 된다.
9월부터 결승전이 시작됐다.대만에서의 1,2국은 1대1.경주에서의 제3국은 林의 승리.서울의 제4국에서 이창호는 대불리의바둑을 기적처럼 역전시켜 2대2.
제5국은 해를 넘겨 92년1월23일 평창동의 올림피아호텔에서열렸다.林9단은 아들뻘인 이창호를 상대로 완벽하게 판을 짜나갔으나 종반에 이창호의 끈덕진 추격전에 말려 1집반차로 역전당했다. 9단들이 모두 탈락하고 5단이 우승했다.17세란 사상최연소의 나이로 이창호가 세계챔피언이 됐다.이 승리는 이창호의 진가를 세계에 알렸다.
이창호는 조훈현만을 전문으로 연구한 안방호랑이가 아니란 사실을 비로소 인식시켜준 것이다.
林9단은 별명 그대로 「신사」였다.패했으나 훌륭한 매너로 끝까지 복기했다.그의 긴 생명력의 원천은 바로 탐구정신이었다.
그러나 지는 해가 떠오른 해를 막을 수는 없었다.깊은 감명을남긴 채 林9단도 「이창호」라는 이름아래 묻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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