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침에>고향有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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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 봄휴가에 해인사를 다녀왔다.
차를 몰고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추풍령을 지나 김천에서 국도에 내려 거창을 거쳐 합천 해인사로 갔다.일요일이었지만 관광철이 아니라 가는 길이 조용해 즐거운 드라이브였다.
해인사에 당도해 큰법당 옆길로 들어서면 멀리 가야산 꼭대기가보이고 물소리 수런거리는 개울을 건너 용탑선원(龍塔禪院)에 들어서니 어머니께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서울서 사간 감귤과 카스텔라를 내려 선방에 들여놓고 함께 선(禪)을 하는 보살들과 주지스님.선방스님에게 인사하였다.여름철에 애들 데리고 이곳에서 어머니와 휴가를 보낸 적이 몇번 있어낯설지 않은 곳이다.
다섯시 저녁공양시간이 돼 어머니.아내와 함께 산채나물.상추.
된장국에 맛있게 절밥을 먹었다.
아직도 해가 남아 큰법당에 올라가니 스님들이 저녁예불로 부산하게 움직이고 바람에 풍경소리가 댕댕거리고 있었다.법당뒤 팔만대장경각(八萬大藏經閣)에 올라가니 7백년넘도록 좀하나 먹지 않은 경판을 볼 때마다 신비스러웠다.가파른 계단을 내려와 법당앞에 서니 뒤로 가야산,앞에 매화산,왼편에 백련암 뒷산,오른편에홍제암 앞산으로 둥글게 휘돌아 만드는 커다란 원형경기장같은 녹음세계가 발아래 멀리 장관이었다.해인사에 들어서면 푸른산과 하늘 빼고는 사람이 만든 것은 하나도 안보이니 정말로 별유천지(別有天地)요,비인간(非人間)이다.
해가 저물어 탑을 돌아 내려가 가야산해인사(伽倻山海印寺)란 현판이 걸린 일주문을 지나 어머니 계시는 선원에 돌아왔다.
내고향 합천은 해인사와 가야산이 있어 아름답지만 댐이 생긴 것 빼고는 지난 30여년간 숱한 개발계획에 한번도 끼지 못해 섭섭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인사도 옛날 그대로이고 가야산은 더욱 푸르고 낙락장송사이로 여울물소리, 저 산넘어 내가 살던 동네,어머니의 미소도 해마다 그대로이니 그래서 고향유정(故鄕有情)이라.
〈재경원 세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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