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Now] 사회서 차별받는 日 '부라쿠' 출신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부라쿠(部落)해방동맹 도쿄(東京)도연합회 상임서기인 우라모토 요시후미(浦本譽至史)는 지난해 12월 살고 있던 월세집에서 쫓겨날 뻔했다. "우라모토는 부라쿠 출신"이라고 적은 익명의 엽서를 받은 이웃 주민 한명이 세집 주인에게 "우라모토를 나가게 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우라모토는 "집주인이 요청을 거절해 계속 살고 있지만 지난해 6월 이후 '죽여버리겠다'는 엽서를 받는 등 22차례나 이런저런 피해를 보았다"고 말했다.

부라쿠는 도쿠가와(德川)막부(1603~1867)시대 가죽 공업.형장일 등을 하던 '천민'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이들은 봉건시대 신분제도(사.농.공.상)에도 끼지 못한 채 '히닌(非人.사람이 아님)' 등으로 불리며 짐승 취급을 받았다. 이 부라쿠 천시의 관습이 아직까지 일본에 남아 있다는 얘기다.

부라쿠 해방동맹 중앙본부 직원인 우치노 다카시(內野貴志)는 "도쿄에서만 지난해 5~12월 126건의 피해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중앙본부에 보낸 편지에는 "'미국이 한번 더 대형 부라쿠 마을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당신 같은 벌레들을 싹 쓸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엽서를 받았다"는 등 섬뜩한 내용이 많다.

부라쿠 해방동맹은 12만여명이 가입해 있는 인권단체. 다니모토 아키노부(谷元昭信) 부라쿠 해방동맹 중앙본부 중앙서기차장은 "19세기 후반 메이지(明治)정부 수립 후 신분차별 제도가 없어져 모두 평민이 됐지만 차별 의식.가문 중시 문화가 여전히 뿌리깊게 남아 있고, 법의 허점도 커 여전히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신분제도 철폐 후에도 호적에는 과거 신분.출신지역 등이 적혀 있고, 누구나 남의 호적을 열람할 수 있어 많은 개인.기업이 결혼.신입사원 채용 때 흥신소.사설탐정 등을 시켜 상대방의 신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니모토 차장은 "부라쿠 지역을 떠나고, 호적상 출신지를 바꿔도 호적에 원적지가 남아 있기 때문에 갓 태어난 아기도 원적지와 '부라쿠 지명 총감'을 비교하면 부라쿠 출신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부라쿠 지명 총감'에 적힌 6000여곳의 후손은 300만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 중 부라쿠 출신으로 밝혀진 사람은 '더러운 피의 후손'으로 낙인 찍혀 결혼.취업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다. 도쿄에 거주하는 한 60대 남성은 "20대까지 규슈(九州)에서 살았는데 부라쿠 출신이란 이유로 세차례나 결혼을 거절당한 뒤 아무도 나를 모르는 도쿄로 이사왔다"고 밝혔다.

오사카(大阪)부 조사에 따르면 1989~98년 부 내에서 부라쿠민 차별 사건이 2700여건 발생했다. 두 곳의 경영컨설턴트 회사는 90~94년 기업.병원.학교 등 1419개 법인의 의뢰로 취업 지망자의 신원조사를 한 뒤 부라쿠 출신에 대해선 '※'표시를 해 건네줬다가 '부라쿠민 차별 금지 조례' 위반 혐의로 적발됐다. 일부 기업은 아직도 은밀히 이런 조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동화(同和)정책' 등 차별 해소와 부라쿠 지역 지원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37개 광역자치단체는 부라쿠민 차별 금지를 밝힌 '인권선언'도 했다.

그러나 다니모토 차장은 "정부가 차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싫어해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며 "인권침해 구제법을 제정하고 한국처럼 인권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