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나는 굴뚝의 연기를 한가닥 더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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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제8회 세계바둑오픈 결승전 제1국
[제6보 (107~131)]
白.朴永訓 5단 黑.趙治勳 9단

1983년의 일본 기성전 도전기. 기성 후지사와 슈코(藤澤秀行)9단에게 26세의 젊은 조치훈이 도전했다. 그때 후지사와가 말했다.

"기술로 친다면 조치훈이 제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굴뚝의 연기를 한가닥밖에 보지 못한다. 나는 한가닥 더 본다."

나이가 40을 넘어서면 점차 바둑의 기량은 쇠퇴하게 마련이다. 하나 혹자는 연륜과 더불어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후지사와는 그 얘기를 굴뚝의 연기에 비유한 것이다.

당시의 승부는 조치훈의 4대3 승리. 그때의 조치훈이 오늘은 40대 후반이 되어 19세 젊은이와 마주앉았다.

좌하의 흑이 모두 잡혔다. 흑▲들도 폐석으로 변했다. 흑도 상변에서 큰 이득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대세는 단연 백이 좋다고 한다. 박영훈5단도 그걸 느끼는지 여유있게 110으로 가일수한다.

하변엔 '참고도' 흑1로 움직이는 뒷맛이 있다. 백2에는 3으로 잇는다. 만약 4로 막았다가는 흑5로 젖혀 좌우가 모두 살아버린다(백A는 흑B로 천지대패). 그런 틈새에 趙9단은 115로 품을 넓힌다. 상변 백대마를 은근히 엿보며 슬쩍 좌변을 지킨 수. 백이 116, 118로 안전을 기하자 119로 또 한번 지켜버렸다. 순간 흑▲의 폐석들이 멋지게 부활했다. 흑이 바짝 따라붙는 장면이다(125.128.131은 패때림).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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