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16. 영원한 후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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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1963년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진출하기 직전의 필자(왼쪽에서 둘째). 목발을 짚고 있는 이가 에드 마스터즈.

당시 조선호텔은 내로라 하는 유명인사들이 찾는 고급 호텔이었다. 그때 총지배인은 나중에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 총수가 됐다. 호텔 사교클럽을 드나드는 외국인들의 수준도 상당히 높았다.

그들 중에는 내 귀가 솔깃해지는 제안을 하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 미국에 데려가서 더 큰 쇼 무대에 설 수 있게 해주겠다는 사람, 유럽으로 가자는 사람 등. 처음 그런 제의를 받았을 때는 당장에 그것이 이루어질 것 같은 기대에 부풀었지만 점차 신빙성 없는 말뿐이라는 걸 알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간혹 다른 의도로 접근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나는 그들을 점차 경계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더 큰 무대를 향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지만, 달콤한 제의를 해오는 사람들의 속내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 무턱대고 말만 믿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차례 공연을 막 끝내고 대기실로 들어가는데 어떤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자신을 미스터 황이라고 소개했지만 어색한 발음과 억양으로 보아 재일동포 같았다. 미스터 황은 한 장의 명함을 내밀며 이 사람이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했다. 그가 건네 준 명함에는 미군방송본부(Armed Forces Radio and Television Service) 소속 에드 마스터즈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내게 접근하는 남자라면 일단 경계하던 터라 이 역시 처음에는 시큰둥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미스터 황의 행동이나 말투가 무척 점잖고 격식을 차린 데다 공신력 있는 방송국 명함을 받으니 마음이 조금 움직였다.

‘방송 관계자라니 한번 만나 볼까?’

그렇게 해서 만난 에드 마스터즈는 내게 정말 세계 무대를 향한 큰 문을 열어줬다. 지금도 그를 내 삶의, 내 노래의 가장 든든한 후견인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영원한 후견인 에드 마스터즈! 그를 처음 만난 순간의 느낌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공연이 끝난 다음 미스터 황과 함께 나타난 에드 마스터즈는 놀랍게도 목발을 짚은 하반신 장애인이었다. 그의 모습을 처음 본 순간, 나는 무척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호기심 반 의심 반으로 만나기는 했지만 내심 걱정한 것도 사실이다. 다른 꿍꿍이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괜한 짓을 하는 것은 아닌지 슬슬 후회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목발을 짚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놀라기도 했지만 다행이다 싶었다.

‘이 사람은 정말 내 능력을 보고 찾아왔구나. 나를 정말 국제 무대로 데려가기 위해 만나자고 했던 것이구나!’

열여덟 살 때, 불의의 교통사고로 허리 아래를 쓸 수 없게 되었다는 에드 마스터즈. 남의 불행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는 것이 두고두고 미안하고 죄스러웠지만 그날의 내 솔직한 마음이었다. 내 삶과 노래의 믿음직한 후견인이었던 에드 마스터즈에 대한 첫 인상은 그렇게 강렬했다.

패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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