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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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희경은 기우뚱 쓰러지면서 거지의 품에 안겼다.거지의 입술이 희경의 입술을 덮쳐왔다.희경은 깜짝 놀라 머리를 도리질했으나 그의 은밀한 목소리가 희경의 힘을 빼앗았다.
『난 여자가 앙탈거릴 때 더 성욕이 치민다니까.』 거지의 입술은 의외로 달콤했다.굳게 닫힌 희경의 이빨을 열고 밀고 들어오는 그의 혓바닥도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희경은 자기도 모르게거지를 부둥켜 안았다.이 남자가 겉은 지저분해도 속은 잘 닦는가 보다.희경은 오래간만에 낯선 남자 를 안아보니 젊었을 때 활발했던 바람기가 다시 스쳐가는 것같았다.거지는 한참 희경을 빨고 더듬더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떨어졌다.
『역시 권태란 무서운 거야.이렇게 달콤한 여자를 두고 저 세상으로 혼자 가다니….』 희경은 잠시 씩씩거리며 거지를 노려봤다. 『너무 억울해 마쇼.난 계약금을 받은 것 뿐이니까…그리고사실 당신도 좋았잖아.내 강간당하면서 싫어하는 여자 못봤다니까….』 희경은 속으로 「미친 놈,그러면 키스만 하지 몸은 왜 만져 이 새끼야!」하고 욕을 퍼부었지만 참기로 했다.이 위에서그래봤자지.
『그이도 권태때문에 자살했다는 건가요?』 희경이 뛰는 가슴을억지로 진정시키며 물었다.거지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이상하게 거지는 정민수 얘기만 나오면 풀이 죽었다.
『권태라기보다 무상(無常)이지.그 사람은 죽음의 본능이 나보다 강해! 그래서 죽는 게 나아! 좀더 일찍 죽었어야 하는데 그래도 당신을 사랑했기에 그나마 버틴거야.그러나 나중에라도 죽기를 잘했어.아마 안죽었으면 나보다 더한 살인귀가 됐을걸….』『말도 안돼요.그 사람이 살인귀가 되다니!』 『자기도 인정했는걸.그 사람이 유독 남들이 안싸우는 보험조합과 싸움을 한 이유가 어디 있을 것같소.다 자기 속의 죽음을 그렇게 해결한 거라구.말이 좋아 대의고 명분이지 국가정책에 정면으로 도전한 거라구.국가를 전복하려는 자는 무 수한 희생을 초래하게 되지.』 『하지만 정민수씨가 하는 일에 많은 사람들이 동조했다구요.』 『아직은 일러.의사들은 좀더 망해야 돼.그동안 저질러온 죄값을치러야 국민적인 동정을 살 수 있지.그걸 알기 때문에 약삭빠른의사들은 다 숨죽이며 있는 거야.그래서 정민수도 뒤늦게 혼자 튄 것이 자기 문제라는 것을 알아차렸지.현실 감각이 없었던 거니까.정민수는 자기 적개심 때문에 가까운 사람들만 불행하게 만들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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