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웅장한 ‘1인 오케스트라’ 외로운 파이프오르간 연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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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기원전 3세기에 처음 만들어진 파이프오르간에는 모든 악기의 소리가 다 들어 있다. “‘악기의 왕’이라는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연주되는 횟수가 적어졌지만 한번 들으면 그 위용에 놀라게 된다”고 설명하는 연주자 김희성씨가 세종문화회관의 파이프오르간 앞에 섰다. [사진=최승식 기자]

10일 오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파이프오르간 연주자 김희성(45·이화여대 교수)씨가 리허설을 하고 있다. 건반은 4개 층이다. 발로 연주해야 하는 나무건반도 있다. 김씨는 양손을 엇갈린 채 발을 스테퍼(stepper) 밟듯 끊임없이 움직였다. 온몸으로 하는 연주는 스포츠에 가깝다. 그는 20세기 오르간 음악의 전설로 불리는 마르셀 뒤프레의 ‘노엘 변주곡’을 연습한 뒤 잠시 쉬었다. 객석을 청소하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아휴, 되게 시끄럽네. 무슨 악기가 이렇게 소리가 커요.”

김씨가 14년째 파이프오르간 독주회를 여는 이유도 이 악기를 생소해 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악기의 ‘왕’이라는 말로는 부족해요. ‘흰수염 고래’ ‘메타세콰이어 나무’라고 할 수 있죠.”

그가 보통 피아노만 한 악기에 다시 앉았다. 연주는 무대에서 하고, 소리는 객석 오른편 벽면 5m 넘는 길이의 파이프에서 나온다. 음악에 맞춰 바람이 ‘쉬익’ 지나갔다. 8000개 넘는 파이프에서 공기를 빨아들인 뒤 내는 소리다. 파이프오르간은 가장 크고 웅장한 소리를 내는 악기다.

이어 찰스 아이브스가 영국 국가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God save the Queen)’를 가지고 작곡한 변주곡이 연주됐다. 중간중간 건반 양 옆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음색이 바뀌었다. 그때마다 플루트·바이올린·트럼펫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 때문에 파이프오르간은 19세기 이전만 해도 두 명이 함께 연주하는 게 보통이었다.

“파이프를 막거나 열어서 오케스트라에 있는 악기들의 소리를 만들죠. 혼자서 교향악단을 연주하는 셈이에요.”

파이프오르간은 일반 악기와 연주법이 다소 다르다. 무대에서 건반을 누르면 약간 뒤에 파이프 소리가 울린다. 연주자는 귀에 들리는 소리와 별개로 머릿속의 건반을 미리 눌러야 하는 ‘두뇌게임’을 펼쳐야 한다.

파이프오르간 연주자의 상황은 요즘 그리 좋지 못하다. 김씨는 예전 교회·성당의 오르간 연주자를 꺼내들었다. 작곡가 생상스는 프랑스 마들렌 교회의 전속 오르가니스트로 명성을 쌓았고, 가장 유명한 오르간 연주자인 올리비에 라트리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중심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고 했다.

“요즘에는 예배도 쉽고 젊게 바뀌고 있기 때문에 오르간 연주자가 갈 곳이 별로 없어요. 새 창작곡에 맞게 연주도 바꿔야 하죠.”

솔로 활동을 하기가 힘든 건 물론이다. 30억원대의 세종문화회관 파이프오르간은 1년에 한두 번 울릴 정도다. 김씨는 이곳에서 14년 동안 독주회를 열어왔다. 1978년 세종문화회관 이후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된 공연장이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는 행운아입니다. 도와주시는 분이 많죠. 아시아에서 가장 큰 파이프오르간을 매년 연주할 수 있잖아요. 청중이 늘어나는 것이 먼저인지, 악기를 갖추는 것이 먼저인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김씨는 20일 오후 7시30분 열리는 이번 연주회에서 파이프오르간의 원리와 매력을 설명할 예정이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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