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아내에 희망줬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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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영남대병원 수술실 앞에서 남편 정운종씨가 수술실로 들어가는 부인의 손을 잡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대구=조문규 기자]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토록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시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정운종(31.경북 경산시 옥산동)씨가 '사랑하는 제 아내 선이를 살려주세요'라는 e-메일을 네티즌들에게 보낸 뒤 1개월여 만에 2000만원에 육박하는 성금과 격려편지가 쇄도했다.

'무능하고 못난 남편'이란 명의로 보낸 메일은 부인이 백혈병 진단을 받았으나 치료비를 마련할 길이 막막해 인터넷 이용자들의 도움을 청한다는 내용이었다.

9일 현재 정씨에게는 1860만원의 성금과 1000여통의 격려 e-메일이 도착했으며, 부인 김점선(31)씨는 대구 영남대병원에서 골수이식에 앞서 이날 혈관확장 수술을 받았다.

金씨가 백혈병 판정을 받은 것은 지난 1월 18일. 경북 경산의 섬유공장에 다니던 중 원단에 미끄러지면서 다리를 다쳐 병원에 가는 바람에 발병 사실을 알게 됐다. 혈액 검사를 하던 중 백혈병 진단이 나온 것이다.

남편이 인터넷 쇼핑몰 사업 실패로 2002년 신용불량자가 되자 생활전선에 뛰어든 부인이었다. 택시 운전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수렁에서 헤어나려고 하던 정씨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처음에는 아내 몰래 한참을 화장실에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데…. 정말 하늘을 원망했습니다."

다섯살배기 아들은 처가에 맡기고, 장모 명의의 10여평 원룸에서 생활하며 남은 빚 7000만원을 갚기 위해 발버둥치던 그였다. "애간장은 녹는데 수백만원의 항암 치료비와 수천만원의 골수이식 수술비를 마련할 길이 아득했어요."

그런 그에게 문득 4~5년 전 일이 떠올랐다. 도움을 호소하던 한 네티즌의 e-메일을 받고 3만원을 송금해준 기억이었다.

결국 그는 각종 인터넷 홈페이지의 게시판에서 아이디가 공개된 1000여명에게 e-메일을 보냈다.

일부는 메일 취지를 오해해 스팸메일 취급을 하기도 했지만, 많은 네티즌이 정씨의 딱한 소식을 외면하지 않았다. 1만~5만원에서 많게는 50만원씩 송금해 오는 사람도 있었고, 용기를 잃지 말라는 격려 e-메일이 하루 50여통씩 도착했다.

鄭씨는 "아내가 완치되면 도와준 사람들을 생각해 더 어려운 사람을 힘껏 돕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대구=황선윤 기자<suyohwa@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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