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舊동독 거물첩자 72세 마르쿠스 울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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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마르쿠스 울프.30세 연하의 세번째 부인과 베를린에서 살고 있는 72세의 노신사다.그의 아파트는 고급가구는 물론 사우나와일광욕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훤칠한 키와 우아한 매너,가죽재킷에 옅은 색이 들어간 안경을끼고 고급 이탈리아 식당에 들어서면 웨이터들은 그를 정중하게 맞이한다.
한번 인터뷰에 수천달러를 받는 그는 『이번 인터뷰가 공짜라는사실은 비밀로 해달라』며 농담을 던진다.이어 『나는 아직도 수많은 1급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스파이라는 이미지를 간직해야 한다』고 말한다.
농담처럼 던지는 이 말은 사실이다.그의 전직은 바로 舊동독의스파이.스파이도 보통 스파이가 아니라 자그마치 5천명의 부하를거느린 스파이 총수였다.서방의 정보기관들도 그를 가장 뛰어난 간첩으로 기억하고 있을 정도다.
그의 조국 구동독은 냉전체제에서 패배했지만 스파이로서의 그는첩보할동이라는 전투에서 대부분 승리했다.마지막 승리는 지난주에있었다.지난 화요일 독일 대법원은 이 구동독 스파이에게 서독에대항해 벌인 간첩활동에 대해 처벌할 수 없다 고 판결한 것이다. 이 판결은 그를 비롯한 과거 동독의 정보기관원들을 모두 사면하는 동시에 93년 그에게 내려진 반역혐의를 뒤집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33년 동안 울프는 동독 정보기관의 총수로 서독의회를 비롯해정당.정보기관,심지어 수상집무실까지 침투해 정보수집활동을 벌였다.이 과정에서 그의 부하중 약 1백명이 서독측에 체포됐으며 또다른 4백명은 아직도 정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 다.
서독 고위관리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그들의 여비서를 꾈 미남계를 쓰기도 했으며 정부요직에 자기 요원을 수년간 심어 놓기도 했다.한 명은 8년 동안이나 동독에 1급 기밀문서와 수십명의 서독스파이 명단을 건네주기도 했다.
『상대편의 패를 다 읽으면서 포커를 하고 있었다』고 울프는 당시를 회고한다.
통일후 그는 반역자로 재판에 회부됐다.검사들은 그에게 무거운형벌을 내리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으나 실패했다.최근 독일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죄를 용서하는 것 같이 보인다.
그 이유는 그가 동독체제의 불가피한 잔존물이지만 매우 똑똑한인물로 드러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과거 동독의 지도자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요즘도 그는 자신의 스파이활동이 전쟁을 막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서방세계의 능력과 의지를 정확하게 동독측에 전달했다는 얘기다.
현역에서 은퇴한 지 오래지만 그는 요즘도 고급정보원을 거느리고 있는 듯하다.지난주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전에 그는 이미무죄판결이 떨어질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울프는 자신의 얘기가 자본주의세계에서 곧 돈이 된다는 사실을잘 알고 있다.그는 지금 두 권의 책을 다 써 가고 있는데 그중 스파이활동에 관한 책의 판권은 수십만달러를 받고 한 출판사에 넘겼다.다른 한 권은 심심풀이로 쓰는데 러시 아요리에 관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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