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系派싸움에 정치는 뒷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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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주당이 난장판이다.사무처는 예산이 없어 일손을 놓고 있고,당사는 지방에서 올라온 당원들이 연일 소란이다.
그런데 이 난장판을 수습할 사람도 없고 정치력도 기대하기 힘든 형편이다.계파 싸움에 밀려 선거는 완전히 뒷전이다.
당을 대표하는 총재가 당무를 거부하고 있으니 민주당의 실체는과연 무엇인가라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李총재가 총재로서 제역할을 다할 수 없는 당내사정을 모르는바 아니다.
그러나 내막이 어떻든 이기택(李基澤)총재는 분명히 민주당 대표다.내분이 생길 때 이를 봉합하고 결속시킬 책임은 총재에게 있다. 총재가 손을 들어버린다면 스스로 허수아비 고용총재임을 자임하는 꼴이다.그런데 李총재는 너무 자주 총재직 사퇴 의사를밝혀왔다.최근 1년동안 세번째다.
지방선거가 한달앞으로 닥친 상황에서 총재라는 지위를 갖고있는사람이『같이 망하자』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겉으로는 경기지사 경선 파문의 당내 조사 결과에 대한 불만이도화선이 됐다.금품.향응 제공이 당규 위반이라고 적시해 자기 체면은 구겨놓고,동교동의 폭력 배후조종 혐의는 벗겨줬다는 것이다. 李총재는 애초 조사위원회가 중립적이라고 인정했다.조사위원인선에도 만족했다.설령 결론이 불리하게 나와도 차기 대권에 도전할 제1야당 총재라면 수습해나갈 정치력이 있어야 한다.
민주당내에는 처음부터 두갈래 선거 전략이 공존했다.동교동측은호남과 서울.경기를,李총재는 비호남권을 겨냥했다.
李총재는 서울과 강원도 외에는 광역단체장 경선대회에 참석하지않았다.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조차 안 갔다.그 시간에 계보원들의 기초단체장 추대대회나 후원회행사 같은 곳에 갔다.
계보원의 경선을 위해서는 李총재와 참모들이 발벗고 뛰었지만 중앙당 활동은 외면했다.때문에 李총재가 어쩐지 이번 선거판에는덜 적극적이다는 비판이 당 안팎에서 나오던 참이다.혹자는 이번선거에서 민주당이 동교동 구상대로 좋은 성적을 올리면 김대중(金大中)이사장이 다시 정치 전면에 나설 것을 우려해 李총재가 재뿌리기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까지 하는 정도다.8월 전당대회의 당권확보를 위한 고도의 계산된 노림수라는 지적도 나오고있다. 그러나 어느쪽이든 선거를 볼모로 한 당총재의 일탈적인행동은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지금 李총재를 비롯한 야당지도부에 가장 시급한 것은 정치력 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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