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 축구장 라커룸에 버저 설치한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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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8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포항-전남의 K리그 개막전.

1-1로 팽팽하던 후반 41분, TV를 중계를 지켜보던 축구 팬들은 황당했다. 한참 치열하게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는데 느닷없이 중계 아나운서의 “정규방송 관계로 중계를 마친다”는 말과 함께 중계가 끝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TV를 보던 사람들은 후반 인저리타임에 터진 포항 남궁도의 극적인 결승골 장면을 보지 못했다.

방송사엔 항의가 빗발쳤고 중계를 맡은 KBS 게시판은 항의성 글로 도배됐다.

방송사가 끝까지 중계하지 못한 속사정은 다른 데 있었다.

선수들이 경기시간에 맞춰 입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선수는 프로축구연맹 직원들의 독려를 받고야 어슬렁거리며 뒤늦게 그라운드에 나타났고, 색깔이 다른 언더팬티를 입고 나오는 바람에 돌아가서 갈아입고 나오는 선수도 있었다.

이에 따라 오후 3시에 시작될 경기가 6분이 지나서야 킥오프됐고 이런 상황은 후반전 시작 때도 되풀이됐다. 하프타임이 끝날 무렵 대기심이 휘슬로 ‘출전’을 알렸지만 몇몇은 물을 마시는 등 딴청을 부리다 또 2분이 지연됐다.

결국 선수들의 늑장 출전으로 경기시간이 8분 이상 늦어지면서 방송사의 편성 스케줄을 갉아먹은 것이다.

프로구단의 한 지도자는 “일부 감독은 경기가 잘 풀리지 않거나 박빙의 승부에서 선수들을 일부러 늦게 내보내기도 한다. 또한 일부 선수는 개인 행동을 하다가 집합시간에 늦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프로축구연맹은 심판실을 비롯해 홈팀과 원정팀 라커룸 등 세 곳에 전자버저를 설치하기로 했다. 경기 시작 5분 전, 후반 시작 5분 전 및 1분 전에 각각 버저를 울려 선수들을 그라운드로 내몰기 위해서다.

프로축구연맹 김원동 사무총장은 “시간 준수는 팬들과의 약속이다. 선수나 구단 모두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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